올 6월 중순 캐나다에서다. 7월 1일 ‘캐나다 데이(Canada Day)’를 앞두고 오타와(온타리오 주)시내 의사당 언덕은 행사준비로 어수선했다. 캐나다데이는 10개 주(Province)와 3개 준주(準州·Territory)로 구성된 캐나다연방 탄생일. 그런데 올해는 그 축하이벤트가 특별히 성대했다. 150주년을 맞아선 데,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지 않는 등 연중 전국적이다.
그런데 시내 오타와 강 너머의 퀘벡 주는 달랐다. 온타리오 주에선 가는 곳마다 ‘150’이란 숫자가 나붙은 데 반해 며칠 후 찾은 몬트리올에선 ‘375’란 숫자만 보였다. 도심의 번화가 길 양편에 200여 개 국의 대형국기가 수백 m 도열한 것도 나는 연방창설 150주년 환영이벤트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몬트리올 설립 375주년을 기념해 몬트리올미술관이 기획한 것이었다. 150주년도 함께 기념하는 것이란 설명도 있긴 했지만 너무 작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캐나다 역사를 모르면 이웃한 두 주가 왜 이리 삐걱대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애초 캐나다에 식민(植民)을 시작한 건 퀘벡 주민의 모국인 프랑스다. 그런데 유럽에서 벌어진 7년 전쟁(1756년 발발)으로 신대륙의 영국과 프랑스도 적대하게 됐고 1759년과 이듬해에 퀘벡시티와 몬트리올이 영국에 함락됐다.
그 결과 뉴프랑스(당시 캐나다의 프랑스식민지)는 영국령북미(BNA·1783∼1907년 존속한 신대륙의 영국식민지)에 귀속(1763년)됐다. 그때 ‘캐나다’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인 퀘벡과 온타리오를 각각 아래쪽(Lower)캐나다, 위쪽(Upper)캐나다로 불렀던 것. 하루아침에 영국민이 된 퀘벡의 프랑스인(6만 명). 프랑스어사용은 허락됐지만 법만은 영국을 따라야 했다.
이것만 봐도 두 주의 역학관계는 짐작된다. 퀘벡 주가 두 번이나 연방에서의 독립을 국민투표(1980, 1995년)에 부친 배경도 물론. 영국 의회는 뉴브런즈윅과 노바스코셔도 연방에 참가하자 결단을 내렸다. 이 4개 주의 캐나다를 자치령으로 독립시키는 대영북미조약 비준이었다. 그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그해가 1867년, 150년 전이다.
식민지 개척 교두보, 세인트로렌스 강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을 이루는 이 강. 오대호에서 흘러나와 장장 1197km를 동진하며 대서양에 흘러든다. 퀘벡 주는 그 북안의 땅. 주도 퀘벡시티와 경제중심 몬트리올 두 시도 모두 강을 끼고 있다. 식민지 건설이 지지부진했던 탓에 신대륙에서 영국의 뒷북만 치던 프랑스. 하지만 전략만큼은 영국을 앞섰다. 강의 가치를 파악한 것이다. 당시엔 강이 고속도로였다. 따라서 강을 확보해야 신대륙을 손에 잡고 흔들 수 있었다. 해안을 차지한 영국과 달리 내륙과 세인트로렌스 강 이북을 겨냥했던 것이다.
그러려면 오대호 서쪽에서 걸프 만을 향해 남행하는 미시시피 강도 챙겨야 했다. 이 강 하구의 루이지애나 주(미국)가 프랑스 식민지가 된 건 그 덕분. 두 강 하구의 올드퀘벡(퀘벡 주)과 뉴올리언스(루이지애나 주·미국)는 대륙내륙 진입통로. 그래서 올드퀘벡은 ‘북미의 지브롤터’라 불린다. 이런 만큼 퀘벡 여행길에 이 강을 알지 못하면 허사다.
富와 전통의 조화, 몬트리올
세인트로렌스 강이 신대륙 개척에 만능 키란 걸 확인한 이는 1534년 유럽인 최초로 여길 지난 자크 카르티에(프랑스). 그러나 수원(水源)인 오대호까지 탐사(사뮈엘 드 샹플랭·1603년)는 69년 후에야 이뤄졌다. 그리고 이후엔 더이상 주저가 없었다. 즉각 정착촌 건설에 나선 결과 1608년 올드퀘벡이 강변언덕에 들어섰다. 포카혼타스 이야기의 무대인 미국 제임스타운(영국이 1607년 신대륙에 세운 최초의 영구식민지·버지니아 주)이 영국에 의해 세워진 이듬해다.
몬트리올은 프랑스의 두 번째 정착촌(1642년). 지금으로부터 375년 전이다. 이곳은 오타와 강이 세인트로렌스 강에 흘러드는 곳에 형성된 섬(삼각주). 원주민(이로쿼이 부족)과 모피교역을 하며 성장했고 그 전통은 여전하다. 북미대륙 물동량의 상당부분을 감당하는 오대호(슈페리어 호)까지 총 3700km의 세인트로렌스 강 수로(Seaway)의 중심(곡물 수출)항구여서다.
그런 몬트리올에서 관광 핵심은 올드포트(Old Port)지구. 거기 플라스 다름(무기광장)에 있는 노트르담성당(1672년)은 북미 최초 가톨릭교회. 쌍동첨탑의 고딕복고풍인 현 건물은 1874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생전에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울림이 좋아 이곳에서 노래 부르기를 특별히 좋아했는데, 크리스마스시즌에 펼쳐지는 헨델의 ‘메시아’ 공연은 늘 일찌감치 입장권이 매진된다.
퀘벡 주는 ‘북미의 프랑스’, 그 상징인 몬트리올은 ‘캐나다의 파리’다. 퀘벡 주는 주민 96%가 프랑스어만 쓴다. 그리고 몬트리올은 파리 밖에서 가장 큰 프랑코포니(프랑스어 구사자) 도시. 시민의 재력도 엄청나다. 캐나다 국부의 70%가 이곳 마운트 로열 부촌주민 소유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도시도 파리를 닮았다. 레스토랑과 음식 등 식문화가 유럽풍인데다 와인 소비량도 엄청나다. 커피도 테이크아웃보다는 앉아서 마시는 경향. 그래서 야외 테이블이 많다. 지난 세기 캐나다경제를 이끈 도시답게 최초로 탄생한 것이 많다. 아이맥스(초대형 스크린 영화)와 재즈페스티벌, 몰래카메라(Just for Laughs), 태양의 서커스가 그것.
북미 유일의 성곽도시, 올드퀘벡
409년 전 북미 프랑스의 첫 정착촌이 들어선 곳. 퀘벡시티(퀘벡 주도)안 세인트로렌스 강변에 있다. 이곳은 강폭이 갑자기 줄어들며 높은 언덕이 솟은 천혜의 요새지형. 또 대서양에서 강을 역류해 내륙으로 항해하는 배를 공격하기에 최적지다. 그래서 17세기 정착 이후부터 계속 성벽(4.6km)을 쌓고 별 모양의 요새도 축조했다. 그게 멕시코 이북에 존재하는 북미 유일의 성곽도시가 된 배경이다.
올드퀘벡은 성안의 윗마을(Upper town)과 성벽 밑 강변 쪽의 아랫마을(Lower town)로 나뉘는데 세 개의 성문과 언덕길로 차와 사람이 자유롭게 드나든다. 그리고 17세기 조성된 성안 윗마을의 골목과 집도 건재하다. 아랫마을은 상인들이 장사를 하던 곳. 역시 멀쩡한데 그중에도 성벽 밑 좁은 골목의 상점가 ‘쁘띠 샹플랭’은 올드퀘벡의 자랑거리다. 올드퀘벡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성안 윗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강이 조망되는 언덕마루 뒤퍼린 테라스에 우뚝 선 샤토 프롱트낙 호텔. 프랑스고성 모습의 이 호텔은 요새와 성벽으로 무장된 올드퀘벡의 고풍스러움을 온전히 지배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뒤퍼린 테라스의 동상은 첫 정착촌을 여기 세운 사뮈엘 드 샹플랭 것이고 그 옆의 기린 다리를 가진 아기코끼리상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호텔 옆 무기광장 앞 빨간 지붕 식당의 간판을 보자. ‘1640년 개업’이다. 이때 우린 병자호란(1636년) 후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복(1637년)한 뒤 청나라로부터 고초를 당할 때다.
올드퀘벡은 한국인 단체관광객도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공유가 출연한 TV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한 이후론 더 늘었다. 성안엔 골목마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줄이 있다. 하나같이 프랑스풍인데 적당한 가격에 맛도 훌륭하다. 가장 붐비는 곳은 아랫마을의 ‘쁘띠 샹플랭’ 골목.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 카페, 작은 술집이 아기자기한 간판을 내걸고 줄줄이 들어서 있다. 뉴프랑스 역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프레스코 벽화건물 앞에서 인증 샷은 절대 놓칠 수 없다.
올드퀘벡 10km 외곽엔 오를레앙이란 섬이 있다. 프랑스전원을 연상케 하는 한가로운 농촌인데 일요일 오후 이 섬 생트페트로니유의 와이너리를 찾았다. 포도는 좁쌀크기로 열렸고 태양은 뜨겁게 작열했다. 사람들은 와인 잔을 기울이며 그늘 아래서 휴일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구릉 너머 강 건너편 숲에 뭔가 보였다. 몽모랑시 폭포다. 폭은 몰라도 낙차(80m)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넘어선다. 낙수는 공중에서도 감상하는데 폭포 위로 가설한 다리에서다.
퀘벡 주(캐나다)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자동차여행: 몬트리올과 올드퀘벡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멀지 않은 토론토, 연방수도인 오타와, 사우전드아일랜드가 있는 킹스턴(이상 온타리오 주)을 연계해 자동차로 여행하면 좋다. 루트는 토론토∼오타와∼킹스턴∼몬트리올∼올드퀘벡(약 1000km). 올드퀘벡과 몬트리올은 253km, 오타와는 440km. 기온은 △7월 13∼25도 △8월 12∼24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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