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현실을 담는다. ‘사랑의 작대기’를 쏘아 서로 맘을 확인하는 일반인 짝짓기 예능을 통해 시대별 유행했던 연애 방식을 살펴봤다. ▽1990년대 맞선형
1990년대 짝짓기 프로그램의 원조라 일컬어지는 MBC ‘사랑…’은 출연자들이 중간매개자인 진행자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맞선’에 가까웠다. 하지만 얼굴을 모른 채 프로필만으로 1차 선택을 하고, 장기자랑 후 최종 선택을 한다. ‘회식에서 돈은 누가 내나요?’ ‘어떤 프러포즈를 받고 싶은가요?’ 등 정작 궁금한 질문을 진행자가 대신 해준다. 커플이 된 남녀는 어색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정면만 바라보다 프로그램이 끝난다.
총 2800여 명의 남녀가 출연해 47쌍이 백년가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결혼 적령기 남녀 연애는 결혼으로 이어져야 성공이라는 전제가 은연중 깔려 있었다.
▽2010년대 헝거게임형
2011년 3월 방송을 시작한 SBS ‘짝’의 출연자들은 오로지 이성에게 선택받기 위해 애정촌이라는 정글에 던져진다. 중매를 하는 매개자는 사라졌지만 영화 ‘헝거게임’처럼 무한 경쟁이 그 자리를 채운다. 방송 내내 ‘승자가 곧 주인공’이라는 공식이 끊임없이 강조된다.
2011년 이 프로에 나온 한 남성은 “11년 동안 대기업에서 일해 돈을 많이 벌어 강남구에 아파트도 샀다”며 본인을 홍보한다. 출연자들은 선물 공세를 하거나 호시탐탐 다른 동성 출연자를 피해 이성과 대화할 기회를 노린다. 이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 또 다른 출연자는 “동물원에 사자도 있고 호랑이도 있는데 난 너구리”라며 자책한다.
▽2017년 사랑과 우정형
6월 2일 첫 방송 후 화제가 되고 있는 채널A ‘하트시그널’ 남녀 출연자들은 한집에서 합숙하며 친구와 연인 사이의 애매한 관계를 유지한다. 밥을 먹고 대화하는 일상이 반복되다 어느 순간 관심이 호감으로, 연애로 변해간다. 그 과정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평가다.
“너는 상대방을 편하게 해준다”는 말을 호감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려하고, 남성 출연자가 만든 티라미수 케이크를 함께 나눠 먹던 여성 출연자들은 ‘나를 위해 만든 건 아닐까?’ 생각한다. 연출자인 이진민 PD는 “2030세대 연애 방식인 ‘썸’이 가진 특징을 극대화하기 위해 ‘직접 고백을 할 수 없다’는 독특한 규칙을 설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년 이상의 시청자에게 썸은 다소 생소할 수도 있지만 요즘 세대에겐 본격 연애로 접어들기 전 필수 과정이다. 이명길 연애코치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연애도 성공 확률을 따질 수밖에 없는 게 요즘 세대의 특징”이라며 “자연스럽게 예능 프로그램도 결혼 여부가 아니라 연애 감정이나 과정 자체를 강조하며 재미를 주는 형식으로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심리학에서도 다루는데, 내 소유인지 아닌지 애매한 것에 사람들은 더 몰입하고 궁금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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