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가기를 원했으나 늘 나에게 가기 전에 먼저 등 뒤로 해가 졌으며 밀물이 왔다/ 나는 나에게로 가는 길을 알았으나 길은 물에 밀려가고 물 속으로 잠기고 안개가 거두어갔다.
때로 오랜 시간을 엮어 적막을 만들 때 저녁연기가 내 허리를 묶어서 참나무 숲속까지 데리고 갔으나 빈 그 겨울 저녁의 숲은 앙상한 바람들로 나를 윽박질러 터뜨려 버렸다.
나는 나인 그곳에 이르고 싶었으나 늘 물밑으로 난 길은 발에 닿지 않았으므로 이르지 못했다.
이후 바다의 침묵은 파고 3 내지 4미터의 은빛 이마가 서로 애증으로 부딪는 한진여의 포말 속에서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침묵은 늘 전위 속에만 있다는 것을.’
-장석남의 시 ‘한진여’
한진여는 물이 들어올 때면 바다 속으로 잠기고 물이 빠질 때면 바다 위로 솟아오른다. 이 암초가 있는 인천 덕적도는 장석남 씨를 시인으로 키운 곳이다. 그는 덕적도에서 나고 자랐다. 바닷물과 암초가 한 사내를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의 시편을 쓰는 이로 만들었다.
사랑은 바닷물과 암초와 같다. 사랑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 ‘나’는 ‘물에 밀려가고 물 속으로 잠기’는 것처럼 사랑에 휩쓸린다. 나는 분명 나에게로 가는 길을 알고 나인 그곳에 이르고 싶지만 애증의 포말은 이 길을 걷기를 어렵게 한다. 그러나 물이 빠진 뒤 바다 위로 솟아오른 암초의 모습은 사랑이 끝난 뒤 남은 나의 상처와 같다. 사랑 속에서 나는 나를 잃어버린 듯했지만, 사랑이 지나간 뒤에야 서로 부딪는 포말 같은 격정 속에 내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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