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흑인만 공격하는 개’의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5일 03시 00분


흑인을 물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어. ‘흑인만’ 물지는 말라는 거야. ―흰 개(로맹 가리·마음산책·2012년)

이 책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로 인종 갈등이 극에 달했던 1968년 미국을 지켜본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이다. 로맹 가리와, 그의 실제 부인이었던 진 세버그가 실명으로 등장해 소설과 수필의 경계를 넘나든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로맹 가리의 집 앞에 길 잃은 셰퍼드 바트카가 나타난다. 바트카의 예의 바른 행동이 맘에 든 로맹 가리는 그를 거둬주기로 하지만 평온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의 앞에서는 온순하기만 했던 바트카가 수영장을 청소하러 온 흑인 일꾼을 본 순간 사나운 짐승으로 돌변해 짖어대기 시작했다. 바트카는 흑인만을 골라 공격하도록 조련된 경찰견이었던 것이다. 실제 개는 회색이었지만 로맹 가리가 ‘흰 개’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흰 개를 변화시키기 위한 로맹 가리의 노력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끈질기다. 채찍질로 세뇌당한 흰 개 역시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의 희생양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에게 흰 개를 무시하고 살아갈 여러 번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 기회를 다 차버린 이유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개의 주인에게 바트카를 돌려줄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개를 지킨다. 이미 뼛속까지 흑인을 증오하도록 교육된 상태이기 때문에 흰 개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며 총살을 권유하는 조련사를 끝까지 설득한다.

그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끝이 난다. 로맹 가리의 부탁으로 바트카의 조련을 담당한 흑인 조련사 키스는 반대로 바트카를 백인만 보면 공격하는 ‘검은 개’로 바꿔 놓는다. 그토록 백인 앞에서는 온순했던 흰 개가, 로맹 가리 자신을 공격하려 드는 모습 앞에서 그는 인간의 차별과 폭력을 다시금 직시하고 절망한다.

미국 흑인 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흑인 9명을 살해한 백인 우월주의자 딜런 루프에게 올해 1월 사형이 선고됐다. 그는 자백 영상에서 “흑인이 매일 백인을 죽이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여전히 내가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흰 개를, 또는 검은 개를 보통 개로 변화시키려 했던 로맹 가리의 눈물겨운 노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흰 개#로맹 가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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