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골반 이야기다. “수십 년간 골반을 안으로 닫다가 갑자기 밖으로 열려다 보니 골반이 말을 안 들어요. 골반 양쪽이 제각각 노는 느낌이에요.”
골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28∼3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리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제전악―장미의 잔상’이다. 이번 작품에는 국악에 바탕을 둔 창작음악은 물론이고 전통무용 오고무가 등장한다. 현대무용수들 사이에서 한국무용수 3명의 존재도 돋보인다. 한국무용수이지만 그냥 무용수로 불리길 원하는 김지연(31), 김현(25), 김민지(24)를 21일 만났다.
이들은 올해 초 국립현대무용단에 입단했다. 한국무용수가 왜 현대무용수와 함께,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춤을 추는 것일까. “한국무용, 현대무용의 구분은 무의미해요. 한국무용 창작춤도 현대적인 것이 많고 최근 현대무용도 한국적인 춤과 소재를 많이 사용해요. 그냥 춤을 추는 것뿐이죠.”(김현)
같은 춤이지만 동작은 많이 다르다. 2인무가 많은 현대무용과 달리 한국무용은 파트너를 들어올리는 동작조차 없다. “상체와 달리 하체 움직임은 한국무용에는 없는 다리를 들어올리거나 차는 동작이 많아 힘든 편이죠. 특히 골반과 어깨를 안으로 움츠리는 한국무용과 달리 둘 다 열고 펴야 하는데 6개월 동안 몸이 변해 가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김지연)
신분의 정체성도 혼란스럽다. “소개를 할 때 한국무용수라고 해야 할지, 현대무용수라고 해야 할지 헛갈려요.”(김민지)
10년 넘게 한국무용을 하다 보니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재미있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번 작품에 국악이 사용되다 보니 춤을 추다가 저도 모르게 ‘덩덩 쿵더쿵’ 하면서 국악 리듬을 탈 때가 있어요.”(김현) “2인무를 처음 시도하는데 평생 춤추면서 그렇게 지면 위로 높이 올라간 적이 없어 당황했어요. 결국 2인무는 없던 일이 됐죠.”(김민지)
한국무용수가 현대무용을 춘다고 응원도 많이 받았지만 전통을 버렸다며 비난도 받았다. 괜한 꼬리표도 따라붙는다. “항상 한국무용수라고 불려요. 다 같은 국립현대무용단 무용수인데요.”(김지연)
이들은 앞으로 현대무용을 배운 한국무용수라는 정체성을 간직하며 춤을 출 계획이다. “한국무용은 저만의 특기예요. 버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죠. 여기에 현대적 테크닉을 가미해 더 자유롭게 춤을 추고 싶어요.”(김현) “지금의 한국무용도 크게 보면 현대무용이죠. 한국적 현대무용을 계승 발전시키고 싶어요.”(김지연) 2만∼5만 원.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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