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은 장식이다. 혹은 허상이다. 기억은 사람을 살게 해주지만 대부분 홀로그램에 가깝다. 대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주어진 끝을 받아들였다. 나는 일흔 두 살이고, 그를 사랑했고, 죽였다.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이 희미하게 사라져가지만 그 사랑은 변하지 않고, 나는 여전히 살아 그것을 견딘다.”
-윤이형 소설 ‘대니’ 중 일부
이 이야기는 기이하다. 할머니가 딸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6개월 된 아기를 맡아 키우는 건 흔한 일이다. 육아에 지친 할머니의 어려움도 그렇다. 그런데 할머니 앞에 베이비시터 로봇이 나타난다. 로봇은 스물네 살 청년의 모습이다.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대신해 아이를 맡아주고 할머니에게 사랑 고백까지 한다.
얼핏 막장SF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인생의 끝’을 향해 가던 할머니는 로봇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70여 년 살아온 세상이 너무나 익숙해져 감정이 사그라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대니와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게임’을 하면서 ‘주인 없는 집 담장 안에 소담스럽게 핀 능소화’나 ‘꽃집 진열대에 걸린 채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견디는 벌레잡이통풀의 벌레주머니’ 같은 것들을 자신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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