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광복 이후 퍼진 일본 대중문화 금지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9일 03시 00분


◇일본을 禁(금)하다/김성민 지음/260쪽·1만5000원·글항아리

‘황금박쥐’(1967년) ‘우주소년 아톰’(1970년) ‘마징가Z’(1975년) ‘캔디’(1977년) ‘독수리 오형제’(1979년) ‘은하철도999’(1981년)….

이제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 시대 자라난 한국인 다수에게 ‘추억의 애니메이션’이 된 이 애니메이션들은 모두 일본산이다. 일본 대중문화가 공식적으로 금지됐던 시절이기에 방영이 국회에서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은 당시 어린이 시간대 편성에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다.

그뿐 아니다. 공식적으로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 건 1998년이지만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일본 소설, 만화, 가요 등을 대중은 자연스럽게 소비했다.

이 같은 수십 년의 경험은 한국에서는 ‘한류’ 이전의 ‘지우고 싶은 기억’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혐한론’을 떠받치는 ‘한국의 문화적 후진성’으로 규정돼 있다. 책은 일본 대중문화 금지와 그를 뛰어넘는 문화의 역동성을 ‘금지의 구축’ ‘금지 메커니즘’ ‘금지의 해체 과정’으로 나누어 살폈다.

광복 이후 언론들은 왜색(倭色) 척결에 나섰다. 해방공간에서 ‘탈식민화’ 작업이었던 일본 대중문화 금지는 박정희 정권 들어 ‘정치적 검열’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여론이 극심해지자 당시 큰 인기를 누리던 ‘동백 아가씨’를 ‘왜색풍’이라며 방송 금지한 것도 그 예다. 그러나 일본 대중문화는 부산까지 닿는 방송 전파나 해적판 음반 등을 통해 경계를 넘었다.

문화사회학자로 일본 홋카이도대 교수인 저자는 일본 대중문화 ‘금지론자’나 ‘개방론자’의 입장에서 책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생각은 자신이 일본어로 쓴 책을 옮긴 이번 한국어판 서문에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정말이지, 문화란 이런 것이다. 아무리 힘을 들여 경계를 긋고, 바깥의 존재를 ‘위험하고 불결한 것’으로 규정하고 공고한 방어 장치를 작동시켜도, 어느새 뒤섞여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과 만나게 되는 그 과정이야말로 문화이며, 삶의 방식인 것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본을 금하다#김성민#일본 대중문화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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