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일본 나가사키 현의 소토메(사이카이 시), 이 글은 산중턱 길가 바위에 일본어로 새겨진 엔도 슈사쿠(遠藤周作·1923∼1996)의 소설 ‘沈默(침묵)’의 한 구절(침묵의 비). ‘침묵’은 17세기 일본의 천주교 박해기에 배교한 포르투갈 신부 이야기다. 그런데 침묵의 비가 여기 선 이유. 소토메가 소설 무대이자 실제 박해 현장이어서다. 배교 거부로 운젠 화산에서 열수를 덮어쓰고 숨져간 순교 교인의 고향이다.
핍박과 순교의 땅, 소토메
비 앞으로는 망망대해, 아래는 가파른 산기슭. 보이나니 산과 바다뿐으로 적막하다. 산자락허리를 자르는 국도 202호선의 상큼한 곡선마저 없다면 생동감이란 느끼지 못할 침잠의 바다다. 그 산등성 멀리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다. 시비마냥 문학관도 침묵의 푸른바다를 응시한다.
소토메는 나가사키의 변방. 지명의 한자(外海·외해) 그대로다. 그렇다면 내해(內海)는? 나가사키 항이 있는 오무라 만(大村灣)이다. 산과 섬에 둘러싸인 지중해 형국으로 게서 나가사키는 안방이다. 반면 소토메는 비바람 횡행하는 갯가 외양간이다. 이 산등성은 해풍의 강타로 시름이 겹다. 바다로 추락하듯 쏟아지는 급경사 비탈은 한껏 치켜든 덤프트럭 화물칸을 연상시킨다. 천하에 몹쓸 땅. 희망이라곤 천국을 선언한 하느님뿐. 천주교인은 그렇게 생겨났다. 그리고 박해가 가해지니 떠날 수밖에. 그렇게 찾은 게 이 바다 끝의 고토열도. 문학관과 시비가 거길 응시하는 건 그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배교한 스승 페라이라 신부를 찾아온 로드리고 신부. 1636년의 실제 인물이다. 작품엔 박해받던 소토메 주민의 고통스러운 일상이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간사랑을 깨닫는 신부의 고뇌와 함께 펼쳐진다. 제목은 그런 고난에도 변함없는 그리스도의 침묵. 신부는 원망하고 애원하지만 종국엔 깨친다. 그리스도가 침묵하지 않았음을. ‘설령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다 해도 나의 오늘날까지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불상으로 위장한 성모마리아상
해무로 희끄무레 실체가 묘연한 수평선 아래, 고토열도가 보인다. 소토메 주민이 실제로 박해를 피해 이주(1797년)했던 곳이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포악한 영주는 영지에 식량이 딸리자 집집마다 장남만 빼고 아이들을 죽였다. 그러니 신자 박해는 얼마나 끔찍했을지. 하지만 섬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주민 텃세로 외진 포구와 산비탈, 무인도로 쫓겼다. 감시도 계속됐다. 주민 신고(5인조 연좌처벌제와 포상제)가 더 무서웠다. 선택은 하나. 잠복(潛伏)만이 살길이었다.
가쿠레기리시탄(隱れキリツタン·잠복천주교인)은 이렇게 등장했다. 초기 로마기독교의 카타콤베(지하무덤교회)와 다르지 않다. 교인들은 숨어서 기도하고 경배했다. 성모마리아상과 고상(예수가 매달린 십자가상)은 불상으로 위장했다. 교리와 기도문은 구전했다. 그게 무려 261년(1612년 금교령∼1873년 철폐).
개항과 더불어 나가사키에 예수회신부가 돌아왔다.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1597년)한 26성인추모성당(오우라천주당·1853년)도 건립됐다. 그 12년 후, 신자 세 명이 이 ‘프랑스 절’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기적이자 부활로 기록된 이 사건. 그리스도가 침묵하지 않았음을 보여준 침묵의 소리였다.
나는 사세보로 향했다. 고토열도행 페리를 타기 위해서다. 열도의 섬은 140여 개. 큰 게 5개라 고토(五島)라 불렸다.
섬엔 나가사키 현 내 성당 133개 중 49개가 있다. 모두 금교령 해제(1873년) 후 기쁨에 넘쳐 한 끼를 굶고 항아리에 저금한 돈을 모아 지은 것. 터는 16세기이후 261년간 지속된 박해현장이다. 그 역사는 지난하다. 1576년 선교 초반엔 주민 400명 중 300명이 신자였다. 1607년엔 프랑스인 주교로부터 주민 3000명이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러나 1613년 금교령 이후엔 탄압으로 일관됐다. 두 신부가 순교했고 신자는 섬을 떴다. 신자가 돌아온 건 1797년. 고토영주의 개척민 이주 요청에 따라 소토메(나가사키)에서 온 가쿠레기리시탄 3000명이다. 정착한 곳은 성당 49곳이 있는 그곳. 버스는 이 성당마다 선다. 노선도 단순해 섬에선 일본어를 몰라도 글씨로 식별 가능해 지도만 보고도 얼마든지 찾아간다.
탄압 피해 기암절벽 해안 동굴속으로
나는 숙소(료칸 마에카와)가 있는 와카마쓰 항구행 버스에 올랐다. 도중 성당 두 곳을 들렀다. 마테노우라(眞手ノ浦·2010년)성당은 주택가 언덕 위 오렌지색 지붕의 하얀 건물. 전면에 십자가 첨탑이 솟구쳤다. 십자가를 상징하는 동백 문양의 창문이 인상적이다. 이 문양은 고토열도 성당의 심벌이다. 두 번째 찾은 곳은 ‘물 위의 성당’이라 불리는 나카노우라(中ノ浦)성당. 후미진 포구의 수변에 자리 잡은 목조건물(1905년)인데 하얀 첨탑과 건물이 수면에 반사돼 그리 불린다. 주민은 1868년 고토쿠주레(五島崩壞·박해) 때 소토메의 구로사키에서 피신한 이들.
이튿날 아침 료칸 주인 마에카와 씨(71)가 모는 어선으로 뱃길 30분 거리 기암절벽해안의 기리시탄동굴을 찾았다. 이곳 역시 피신처. 아침밥을 짓느라 피운 불의 연기로 발각돼 끌려갔다. 입구엔 3m 높이의 하얀 십자가가 있고 매년 추모미사도 봉헌된다. 와카마쓰와 나카도리(아리카와 항) 두 섬은 대교로 이어졌다. 섬의 바다는 맑고 고기도 많다. 그래서 대형양식시설이 즐비한데 잡은 고기도 거기 보관한다. 둘째 날은 나카도리 섬에서 북행했다. 현대적 외관에도 내부는 메이지시대 원형(박쥐날개 형상의 천장)을 유지하는 도이노우라(土井ノ浦)성당, 숲에 둘러싸인 포구언덕의 기리(桐)성당, 종려나무로 남국 정취가 짙은 모래해변언덕의 다카이타비(高井旅)성당, 겨우 일군 마을을 버리고 피신했다가 돌아와 다시 일궈야 했던 소토메 출신 주민이 직접 벽돌을 날라 지은 후쿠미(福見)성당….
이 중 기리성당은 잊을 수가 없다. 이 섬 출신 최초 사제인 가스발 요사쿠 신부가 성소(聖召·하느님의 부름)를 얻은 곳이어서다. 그는 신자발견 기적 후 신부 도래의 기쁜 소식을 이 섬에 최초로 전한 인물. 당시 나가사키에서 치료 중에 우연히 본 성물을 토대로 신부를 수소문해 교리수업을 자청했다.
그 후 전도사가 되어 섬에 돌아와 ‘7대째 고대해온 신부가 나가사키에 돌아왔다’고 알렸다. 다카이타비성당(1961년 건축)의 해안마을 주민 100여 명은 1939년 가쿠레기리시탄에서 천주교인으로 돌아온 이들. 철인3종경기 출발점인 해변엔 통나무 펜션과 휴게시설도 있다.
하얀 창틀-붉은 외벽, 프랑스풍 성당
고토열도에선 꼭 기억할 인물이 있다. 메이지시대 성당건축가 데쓰카와 요스케다. 이 섬 출신 대목(大木·집짓는 목수)으로 성당을 짓던 프랑스신부를 돕다 인연이 되어 성당건축가로 발돋움했다. 신부들은 서양건축에 문외한인 그에게 서양건축기법을 전수시켰다. 박쥐날개무늬천장이라 불리는 리브드볼트(Ribbed Vault·늑재로 이은 둥근 천장)기법과 그 기초가 되는 기하학 등등을. 초등졸업 학력을 건축 잡지 구독과 독학으로 극복해 건축학회 회원이 됐고 나중엔 규슈 유일의 종신회원(1966년)까지 올랐다.
나는 그가 지은 성당 세 곳을 찾았다. 근방에서 캔 사암으로 지은 가시라가시마(頭ヶ島) 성당은 중후함이 풍겨나는 근대건축물. 그런데 첫날 프랑스신부의 성당봉헌미사 때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한 여인이 아들(시마다 요시조우)을 두고 간 것. 소년은 사제수업을 받던 중 1868년 박해 때 홍콩으로 밀항했다. 서양인의 망토에 숨어. 그는 금교령 해제 직후 귀국, 나가사키신학교에서 사제서품(1887년)을 받았다. 그리고 섬에 돌아왔는데 그날 고향 에부쿠로에선 주민 17가구가 새 신부를 위해 성당을 지어두고 그를 맞았다. 그게 에부쿠로성당이다.
사암의 가시라가시마 성당이 영국 조지아풍이라면 붉은 벽돌의 아오사가우라(靑砂ヶ浦)성당(1910년)은 전형적인 프랑스풍이다. 현관의 하얀 테두리 장식, 하얀 창문틀이 붉은 외벽과 이룬 조화가 멋지다. 소박한 소네(曾根)성당은 그 위치가 기막히다. 동쪽으론 고토해, 서쪽으론 동중국해가 두루 조망되는 능선의 온천지역(사이카이국립공원)이다. 이탈리아풍 리조트호텔 마르게리타도 여기 있다.
시마다 신부를 위해 지은 에부쿠로(江袋)성당(1882년·박쥐천장)은 고토열도의 목조성당 중 가장 오랜 것. 하지만 2007년 누전사고로 크게 상해 현재 건물은 복구(2010년)한 것이다. 기둥 들보 등 구조 체와 위와 옆 벽, 바닥 등 타지 않은 부분은 그대로 드러낸 채.
신가미고토쵸(일본 나가사키 현)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규슈지역 버스승차권 ‘산큐패스’로 성당 순례▼
산큐패스(사진)는 사흘(북부규슈·규슈 전역)이나 나흘(규슈 전역)간 시모노세키(야마구치 현)까지 규슈의 거의 모든 노선버스를 이용하는 승차권. 배(세 항로)와 철도(일부)도 가능하다. 고토열도성당순례에는 북부규슈 3일 권이 좋다. 후쿠오카(공항·시내)∼사세보 항 왕복과 고토열도(이틀) 일정이다. 후쿠오카시내(하카다 혹은 텐진버스센터)∼사세보 항은 하루 34회(주말 35회) 운행(1시간 51분 소요). 신가미고토쵸(고토열도)에선 사이히(西肥)버스 탑승. 주요 성당마다 선다.
북부규슈(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오이타 구마모토 등 5개 현)3일 권은 6000엔, 규슈전역은 1만 엔(3일) 1만4000엔(4일). 규슈투어(www.kyushutour.co.kr) 티몬 등지에서 할인가에 살 수도 있다.
◇이용방법 : ‘SunQ Pass’스티커 부착 버스면 OK. 뒷문으로 승차, 앞문으로 하차. 탈 때 뽑은 정리권을 내릴 때 함에 넣고 패스를 운전기사에게 보여준다. 고속버스(일부 노선)는 전화로 좌석예약을 한다. 필요시 3자통역서비스(무료) 요청. △규슈타비(http://kyushutabi.net): 산큐패스를 이용한 규슈여행 요령 등 상세 정보가 담긴 블로그. 모든 궁금증을 풀어준다.
※여행정보
배편: 사세보∼아리카와 항(75km). 사세보 페리터미널은 사세보버스센터(사세보 역 앞)에서 도보 3분. ◇여객선 ▽규슈쇼센(九州商船) △고속선: 2시간 20분 소요(4760엔·이하 어른편도) △페리:2시간 35분(2740엔·2등실) ▽고토산교키센(五島産業汽船) △고속선: 1시간 40분(4940엔) △페리: 2시간 30분(3100엔·2등실)
숙소: ◇고토열도 ▽마르게리타 리조트호텔: 신가미고토 쵸 소네성당 앞. 이탈리아풍의 고급 리조트호텔. www.margherita-resort.jp ◇사세보 ▽유미하리노오카(弓張の丘)호텔: 시내 유미하리노오카 산정전망대 밑. 사세보의 다도해인 구주구시마(九十九島)의 해넘이와 노을, 사세보 항과 시내 야경을 온전히 즐기는 기막힌 위치의 지중해스타일. http://yumihari.com
'섬에는 편의점이 없다. 식당도 드무니 일정을 짤 때 점심식사는 아리카와 마을의 관광특산품지구 내 우동전문점 '유메잔마이'(遊麵三味 월요일 쉼)에서 드는 걸로 한다. 고토우동은 사누키우동과 더불어 일본3대 우동에 든다고 하는데 특징은 자체 무게로 면발의 길이를 늘려 찰진 식감을 주는 국수. 대표메뉴는 '데친 고래정식'우동으로 고래잡이로 이름났던 고토열도의 역사를 담고 있다. 기념품으로는 이 바다에 흔한 날치를 넣어 숙성시킨 조미간장이 이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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