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너무 어른스러워서 아무도 귀여워하지 않았어요. 거꾸로 지금은 나이든 어른이 애같이 유치하고 덜떨어졌대요. (…) 어른 같은 애나 애 같은 어른이나 징그럽기나 하지 누가 좋아하겠어요.
나는 남을 이해하려고 정말 노력했는데 날 이해해준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인간관계가 다 그래요. 겉으로 보는 나만 볼 뿐이지 고민은 들어보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무언가 얻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고 그걸 못 주게 되면 버림받는 거예요. 인생은 반복되나 봐. 한번 치인 덫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은희경 소설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숲에 덫을 놓았을까’ 중 일부 교과서대로, 부모님 말씀대로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칭찬받을 만한 말을 하고 그럴 만한 행동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인생의 진리’라고 믿었다. 은희경 씨의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숲에 덫을 놓았을까’는 이렇게 믿었던 소라의 이야기다. 그래서 어렸을 적 소라는 애어른처럼 보였다. 그런데 또래 친구들에게서 돌아오는 건 질투가 아닌 비웃음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소라는 그가 믿었던 인생의 진리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진심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남이 바라는 것을 눈치껏 부응해준다. 그런데 누구도, 심지어 남편조차도 그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소라는 얼핏 위선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타인과의 교감을 원하는 애처로운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은 소라를 향해 “뜬금없다”고 손가락질한다. 작가가 보기에 세상의 진리란 그런 것이다. 호의를 주고 이해하는 듯하지만 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해낸 이 도드라진 캐릭터 ‘소라’에게 가해지는 위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 또한 그런 위악을 행하지 않느냐고, 그것은 당신의 마음 에 있는 ‘소라’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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