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아는 게 거의 없을수록, 즉 퍼즐에 비유하면 맞출 수 있는 조각의 숫자가 적을수록 오히려 정합적 이야기를 만들기 쉽다.―‘생각에 관한 생각’(대니얼 카너먼·김영사·2012년) 》
“내 그럴 줄 알았지!”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은 사실 ‘모른다’. “알았으면 막지 그랬냐”고 되물어본 뒤 반응을 보라. 우리는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 걸 확인한 후에야 ‘안다’고 말하곤 한다. 단순히 과거에 ‘그러지 않을까’ 정도로 한 생각을, 나중에는 ‘알고 있었다’고 착각한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인 저자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최초의 심리학자다. 그는 이런 식의 ‘알다’는 말이 ‘엄청나게 위험하며 치명적인 착각’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한다. 스스로 세상을 실제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많은 이들이 “그럴 줄 알았어”라고 한 것처럼.
무식하면 용감해진다. 우리는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복잡한 세상을 최대한 단순하게 이해하고자 한다. 그것이 우리의 에너지를 아껴준다. 인간 뇌의 한계 탓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 그래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단계까지 가면 곤란하다.
잘못된 일에 대해 나중에 비난하기는 쉽다. 9·11테러 발생 두 달 전 미국중앙정보국(CIA)이 ‘알카에다가 테러를 계획 중일지 모른다’는 첩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자 엄청난 비판이 일었다. 사람들은 ‘정보당국의 무능함’에서 쉽게 이유를 찾는다. 그게 자신들이 세상을 가장 간단명료하게 이해하는 방식이어서다. 과연 그 사람들은 2001년 7월 CIA 내부에서 그 정보를 봤다면 테러를 막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까.
사후 비판이 거세면 거셀수록, 결정자들은 ‘표준 운영 절차’를 만들고 그것만 따르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결정이 비난과 성토의 대상이 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의료 사고가 빈번히 일자 의사들은 실효가 없더라도 더 ‘일반적인’ 치료법을 적용한다. “왜 다른 치료법을 썼죠?”라는 비난을 듣기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환자를 위하는 길일지는, 역시 알기 어렵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