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8월 7일 대전엑스포가 일반 관람객에게 문을 열었다. 개장에 앞서 그해 2월 2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독자 편지 한 토막. “요즘 TV에서 대전엑스포의 ‘도우미’ 모집광고를 보았다. ‘도우미’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것이 일본어인 줄 착각했다. 어감 상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뒤늦게 그 말의 뜻이 ‘도와주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란 것을 알고 어이가 없었다. 한글이면 한글이고 한문이면 한문이지 국민학생(초등학생)들의 유치한 낱말놀이도 아니고 어떻게 국제적인 행사에 생전 듣고 보도 못한 낱말을 되지도 않게 맞추어 버젓이 광고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편지를 쓰신 분은 도우미가 대전엑스포가 끝나고 24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이 이렇게 널리 쓰는 낱말이 될 줄 상상도 못하셨을 터다. 당시만 해도 그만큼 도우미는 낯선 낱말이었다.
이제 도우미는 ‘도움’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가 붙여 만든 낱말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으실 터. 그런데 당시 대전세계박람회(대전엑스포 공식 명칭) 조직위원회 공식보고서는 이 독자의 지적처럼 도우미가 ‘도와주고 해결해주는 우아한 미인’을 줄인 말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니 저렇게 불편해 하시는 분이 나온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와 별개로 도우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독자가 지적한 도우미 모집 광고를 통해 1주일간 2만2000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 경쟁률 30대1을 기록했다. 항공 승무원이나 비서로 이들을 특채하겠다고 발표한 회사가 있었기에 도우미 공모는 더 인기를 끌었다. 또 엑스포가 공식 개막한 뒤로도 전시관을 둘러보기보다 이들과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짓궂은’ 남성 관객도 적지 않았다.
엑스포 자체도 인기였다. 그해 11월 7일 공식 폐장하기까지 총 1450만 명이 이 박람회를 관람했다. 대한민국 사람 3명 중 1명은 이 행사장에 다녀온 셈. 특히 당시 국민학교나 중학교 중에서는 가을 소풍 장소로 이 엑스포를 정한 곳이 대다수였다.
대전엑스포 공식 마스코트 꿈돌이는 몸에 여러 과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테두리를 두르고 있었다. 이 영향으로 당시 국민학생들 사이에는 훌라후프 품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전엑스포 당시 서울 동대문구에서 국민학교를 다녔던 K 씨(33·여)는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훌라후프를 하다가 점프를 뛰는 기술을 ‘꿈돌이’라고 불렀다”고 회상했다.
이제 ‘국민MC’ 반열에 오른 방송인 강호동 씨도 대전엑스포를 통해 씨름 천하장사에서 방송인으로 탈바꿈했다. 강 씨는 개장 이튿날인 1993년 8월 8일 8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2만8233명과 악수하면서 기네스 기록을 새로 썼다. 대전엑스포가 끝난 뒤 행사장은 1994년 8월 ‘엑스포과학공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찬란한 과거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는 법. 현재 이 공원은 대전시에서 ‘엑스포재창조사업’을 추진하면서 시설 철거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엑스포과학공원 관계자는 “1993년 엑스포 전시관이 들어 있던 자리에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자리 잡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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