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희덕의 ‘푸른 밤’ 계산기를 두드리는 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면, 시를 쓰는 건 사랑을 하는 것이다. 밤이 푸르도록 지새우기를 한순간에 할 수 있는 건 사랑뿐이다.
나희덕 씨의 시 ‘푸른 밤’은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는, 격정의 감정으로 시작한다. 별의 반짝임, 꽃의 흔들림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이가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시적 화자에게 사랑과 치욕의 감정은 등가인데, 그것은 둘 다 자신을 지킬 수 없어서이다.
‘푸른 밤’의 화자는 자신이 사랑에 빠진 수만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가 느끼는 것은 다른 이와 나눌 수 없는 그만의 것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막상 겪게 되면 오롯이 자신만의 감정이 되는 게 사랑이다. 그래서 ‘그 수만의 길’이 내게는 ‘단 하나의 에움길’이 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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