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은 한국 마라톤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날이다. 1936년 손기정 선생(1912~2002)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그로부터 56년 뒤 황영조 현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47)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모두 8월 9일이었다.
손 선생이 마라톤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일본 라디오를 통해 들은 동아일보는 바로 호외를 발행해 뿌리는 한편 메가폰을 들고 가두선전으로 이 소식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일장기 말소사건’ 주인공 이길용 기자(1899~?)는 1948년 ‘신문기자 수첩’(모던출판사)에 “회사 앞에 야심한 삼경(三更·오후 11시에서 오전 1시 사이)이건만 운집한 대군중 모두가 전파 일성에 환희 일색이요, 함성 환호뿐이다. … 목이 터지게 외치는 ‘손기정 만세!’ 소리는 기미년(1919년) 독립만세 소리에 방불한 바 있었다”고 썼다.
바르셀로나 대회 마라톤 우승도 극적이었다. 황 감독은 경기장 서쪽의 급경사 난코스였던 ‘몬주익 언덕’에서 골인 지점을 2.4㎞ 남기고 마지막 스퍼트로 2위 모리시타 고이치(森下廣一·49)를 따돌리고 우승했다. 그 뒤로 황 감독에게 붙은 별명이 ‘몬주익의 영웅’.
이날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에는 손 선생이 직접 참석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손 선생은 남자 마라톤 경기일이 자신이 금메달을 땄던 그 날과 날짜가 같다는 사실을 알고 큰 기대를 품은 채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손 선생은 1992년 올림픽 당시 동아일보에 보낸 특별 기고문에 “지난 56년간 나를 지탱해왔단 단 하나의 꿈이 바로 한국 마라톤의 올림픽 제패였다. 나이가 든 뒤엔 이 꿈이 더욱 절박해져 ‘꿈’ 정도가 아니라 ‘강박의식’처럼 늘 나를 짓누르곤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황영조가 한국마라톤의 숙원인 10분벽을 깨고 2시간 8분대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뇌리에 죽기 전에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전류처럼 흘렀다. 내가 굳이 이 나이에 이곳 바르셀로나까지 날아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꿈을 이루어지는 순간을 보았다”고 썼다.
황영조에 이어 마라톤 은메달은 일본, 동메달은 독일 선수가 각각 차지했다. 손 선생은 “56년 전 이날 한국인인 내가 일본 국기를 달고 독일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그 세 나라 국기가 나란히 올라간다”며 감격해 했다. 황 감독은 시상식이 끝난 직후 손 선생을 찾아 목에 직접 금메달을 걸어줬다.
남자 마라톤은 보통 올림픽 마지막 경기로 열린다. 폐회식이 끝난 뒤 손 선생과 황 감독은 나란히 손을 잡고 주경기장을 한 바퀴 뛰었다. “한국이 금메달을 땄다. 한국이 또 올림픽 마라톤을 먹었다”고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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