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청은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경복궁 내 근정전 앞에 연건평 1만여 평(약 3만3000㎡) 규모로 지은 5층 석조건물이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청사로 사용됐다. 광복 이후에는 미 군정청의 본부로 전용됐고 ‘캐피털 홀(capital hall)’이라 불렸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이를 번역해 ‘중앙청’으로 부르게 됐다.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한 주요 행정부처가 이 건물에 자리를 잡아 중앙행정관청으로 기능한 것도 이 이름의 근거가 됐다.
6·25전쟁 중 건물이 일부 파괴됐지만 5·16 직후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이뤄졌다. 일제 침략의 상징적 건물이기에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과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한반도 전역의 자재가 골고루 투입됐기에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면서 논란도 이어졌다. 1983년 과천 정부청사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는 한국 행정의 중심이었지만, 이후 ‘중앙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기능은 사라져갔다. 일제 침략의 상징적 건물이었기에 주요 정부기관의 집무실로 사용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구 중앙청 건물로의 이전 전시를 끝내고 21일 오전 개관했다.”(동아일보 1986년 8월 21일자 1면)
앞서 경복궁에 지어진 국립중앙박물관이 협소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일제의 건물을 우리의 문화적 공간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게 된 데 대해 ‘당초 조선조 왕궁자리였던 것을 감안하면 바람직한 일’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개관 3개월이 다 되도록 일제가 내선일체를 강조하기 위해 그린 일본인 화가의 벽화가 중앙홀에 그대로 걸려 있는 등(동아일보 1986년 10월 18일자) 허술한 관리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중앙청이 일제의 잔재인 만큼 철거냐 보존이냐를 놓고 논란은 계속됐다. 결국 해체하기로 결정됐고 1995년 8·15 광복 50주년을 맞아 철거가 시작돼 이듬해 11월 완전 철거됐다. 중앙청에 깃들었던 국립중앙박물관은 1996년 경복궁 내 사회교육관 건물을 증·개축해 개관했다. 이어 2005년 10월 용산가족공원 내 새로운 건물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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