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도서관]외로우니까 사람이다…‘수선화에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2일 16시 17분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
위로의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정호승 시인.사진 동아일보DB
위로의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정호승 시인.사진 동아일보DB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는 말은 시로 쓰기엔 적나라한 것처럼 보인다. ‘수선화에게’의 한 행을 딴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이런 이유로 비판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대중적이라는 지적이었다.

실제 그랬다. 대중들은 정호승 씨의 이 시집에 커다란 호응을 보냈다. 난해하지 않고 솔직한 시구들은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렸다. 공감이 이어졌다. ‘대중적’이라는 지적이 ‘대중이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됐다.

이 시에는 외로움을 느끼는 주체가 다채롭게 등장한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들부터 울려 퍼지는 종소리, 마을에 드리워지는 산그림자, 물가에 앉아 있는 당신에 이르기까지 외로움을 느낀다.

시에선 심지어 하느님도 외로워하신다. 외로움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절대적인 감정을 시인은 이렇게 다사롭게 만지면서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외로움을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이 담담한 두어 마디가 얼마나 큰 다독임인지 이해할 것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단순해 보이는 시구는 그래서 따뜻한 위로가 된다. 사실 시 한 편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면, 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것 아닌가.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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