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책장(冊張)을 열기 전엔 살짝 얕잡아 봤다. 국제 결혼한 부부(때론 연인)가 상대 나라 여행기 혹은 체험기를 묶는 형식. 그리 새로운 스타일이라곤 말 못하겠다. 게다가 통계학과 법률 전공의 프랑스 남편과 영화학 박사 아내라. 정말 ‘풍경’에 대한 ‘감각’만 나열한 게 아닐까 걱정됐다. 가끔 어떤 책은 자기들 연애담이 8할인 경우도 많기에.
와, 근데 이 책은 한 장만 읽어봐도 찌릿하게 촉이 온다. 허투루 쓴 게 아니란 걸. 부부는 파트 1과 2로 나눠 각자의 문장을 담았는데, 글을 짓는 솜씨가 느긋하면서도 오밀조밀하다. 매우 수준 높은 퀼트(quilt) 작품을 마주한 기분이랄까. 그들은 프랑스어로 ‘플라뇌르(flaneur·천천히 걸어 다니는 산보객)’를 자처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사색한 티가 역력하다. 딱 그만치 공감 가고 신선하다.
뭣보다 저자들의 시선엔 서로의 문화에 대한 존중이 있다. 배우자가 살아온 사회를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 노력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터전을 강요하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파리지앵 남편은 두 도시의 카페를 자연스레 비교하며 서울 커피숍의 장점을 유머러스하게 정리한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파리 카페는 오히려 면박을 주지만, 또 나름 그들의 방식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 쉽게 보기 힘든 성찰이다.
얼추 다 좋지만 괜히 좀 뻗대 보련다. 아닌 척하지만 남편은 자부심이, 아내는 부러움이 짙다. ‘역시 파리는 근사한 도시야’란 전제가 여기저기 깔려 있다. 물론 틀린 말이야 아니지. 그래도 무게추가 기울다 보니 균형감은 별로다. 뭐, 서울도 나아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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