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길고 스트레스가 많은 4년이 될 겁니다(만약 우리가 살아남는다면요). 이 책은 당신이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 반스앤드노블 서점에 들렀다가, 책 한 권에서 시선이 멈췄다. 직원 추천도서 코너 맨 위에 놓인 ‘트럼프 서바이벌 가이드(The Trump Survival Guide·사진)’라는 책이었다. 도발적 제목보다 서점 직원이 볼펜으로 정성껏 꾹꾹 눌러 쓴 추천 글이 눈길을 끌었다. 아마존 등 온라인 서점과 경쟁하기도 바쁠 텐데 나라 걱정까지 해야 하다니. 서점 직원의 갑갑한 마음이 손글씨로 전해졌다.
이 서점에서 5번가를 따라 몇 블록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트럼프타워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여름 휴가 막바지에 이곳에 들렀다. 취임 후 처음 자택으로 금의환향했건만, 뉴욕 시민들은 대체로 싸늘했다. 트럼프타워 앞엔 귀향한 대통령을 옹호하는 시위대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아 보였다.
‘트럼프 서바이벌 가이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낙담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현실이 실망스럽더라도 정치에 등을 돌리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라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폭력적이진 않다. 저자는 “트럼프와 그의 팀이 이 나라에 심각한 해를 끼치려고 한다면 당차게 맞서는 게 우리의 의무다. 할 수 있는 한 법적이고 지적이며 사려 깊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생존 가이드라는 제목답게 교과서처럼 친절하고 일목요연하다. 예를 들어 시민권 항목에선 미국사회의 민권운동의 역사와 배경을 설명한다. 증오범죄방지법 서명처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한 일과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하려는 일을 대비시킨다.
이어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제시한다. 투표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민권 관련 시민운동에 관여하거나 관련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것이다. 또 증오범죄를 보면 문제를 제기할 것을 당부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교류할 것도 조언한다. 마지막으로 시민권과 관련해 읽어두면 좋은 책 목록을 제시한다. 경제 안보 교육 등 나머지 11개 항목도 같은 식이다.
저자는 책 첫 장에 “’우리나라는 다수에 의해 지배되지만 소수를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미국인의 이상에 이 책을 바친다”고 헌사를 썼다. 책을 덮을 때쯤 성숙한 시민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기본기를 잊고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자각이 트럼프 시대가 주는 뜻밖의 선물이다.
“조직 참여, 자원봉사, 보이콧, 서명운동, 정치인과 연락하기 같은 일과 참여와 기부를 할 만한 단체, 읽은 만한 책도 소개해주죠. 너무 늦기 전에 꼭 읽어보세요.”(반스앤드노블의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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