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4월 1일 창간한 동아일보는 그해 오늘 3면에 ‘오늘!’이라는 사진 기사를 통해 나라를 빼앗긴 지 10년이 됐다는 사실을 상기키셨다. 당시 기사를 요즘 말에 가깝게 풀면 이렇다.
“10년 전 오늘이 한국이 일본에 합병되던 날이올시다. 금년 8월 29일이 한일합병의 10주년 기념일이올시다. 사진은 한일합병조약에 양국 편에서 도장을 찍었던 곳이니 지금 총독관저 안에 있는 방이오, 그 방에 있는 사람은 한국 통감으로 합병조약을 체결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요, 왼편의 인물은 한국편으로 조약에 도장을 찍은 당시 한국 총리대신 이완용.”
이 기사에 이완용 사진을 썼다는 것만 봐도 당시 그가 ‘매국노의 대명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모두 이름을 올린 그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니, 이완용을 제외하면 나머지 매국노가 누구였는지 이름을 대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그만큼 지금은 더욱 더 ‘매국노 = 이완용’이다.
1926년 이완용이 숨을 거두자 동아일보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횡설수설’을 통해 “이완용이 염라국 사람이 되었으니 (염라국마저 팔아먹을까 봐) 염라국의 장래가 걱정이 돼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썼다. 당연히 일제는 이 기사를 삭제하도록 명했다.
보기에 따라 재미있는 건 이완용은 친일파였지만 일본어를 제대로 할 줄 몰랐다는 점. 대신 조선 최초 근대식 교육 기관인 ‘육영공원’ 출신인데다 미국 주재 외교관을 지냈기에 영어는 아주 유창했다. 그래서 나라를 팔아먹을 때도 영어를 썼다. 그는 죽기 전 아들에게 “이제 미국이 초강대국이 될 것 같으니 친미파가 되거라”하고 유언을 남겼다. 이렇게 좋은 ‘촉’을 엉뚱한 데 쓰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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