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천리향이 있다는 것은 세상 모든 곳에 천리나 먼 거리가 있다는 거지 한 지붕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아내와 나 사이에도 천리는 있어 등을 돌리고 잠든 아내의 고단한 숨소리를 듣는 밤 방구석에 처박혀 핀 천리향아 네가 서러운 것은 진하디 진한 향기만큼 아득한 거리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지 얼마나 아득했으면 이토록 진한 향기를 가졌겠는가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것은 살을 부비면서도 건너갈 수 없는 거리가 어디나 있다는 거지’
-손택수 시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에서》
서향나무에 피는 꽃은 그 향이 천 리를 간다고 해서 ‘천리향’이라 부른다. 400㎞ 가까운 이 거리, ‘천리’가 방 하나에도 있다. 한 지붕 아래서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아내와 시적 화자 사이의 거리다.
결혼한 남녀라면 누구나 공감할 터. 부부는 촌수가 없다지만 돌아서면 남이고, 이 양면성은 살 붙이고 사는 부부가 하루에도 몇 번씩 겪는 일이다. 곁에 누워 등을 돌리고 잠든 아내 혹은 남편이 아득하게 멀게 느껴지는 밤은 적지 않다. 그때 아내 혹은 남편은 ‘방구석에 처박혀 핀 천리향’이 되고, 두 다리로는 건너가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 ‘살을 부비면서도/ 건너갈 수 없는 거리’를 어찌할 수 없이 가늠하게 된다.
그러나 천리향에는, 천리라는 먼 거리를 건너갈 수 있는 ‘향기’가 있다. 비록 물리적인 거리는 아득하다 해도, 넓게 퍼져가며 그 거리에 닿을 수 있는 향기는 진하다. 아내와 시적 화자 사이에 놓인 먼 거리를 가는 ‘이토록 진한 향기’는 ‘시간’과 ‘기억’의 다른 말일 것이다. 아내와 남편 사이에 켜켜이 쌓이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공유하는 기억들이 천 리라는 아득한 길을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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