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생리대가 문제가 된 뒤 한 언론사에서 촬영한 동영상에 한 학생이 남긴 말입니다. 많고 많은 낱말 중에서 마술이 왜 생리를 뜻하는 표현이 된 걸까요?
정답은 ‘풍채 좋은 산타클로스가 붉은 옷을 입고 수염을 기른 것’하고 같은 이유입니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결혼반지 대명사가 된 것도 마찬가지고요. 아, 한국 국가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도 같은 이유죠. 그러니까 기업체 마케팅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1990년대 중반 생리대 제조업체 D사는 “한달에 한번 여자는 마술에 걸린다”를 광고 카피로 앞세웠습니다. 제품 이름에 ‘매직(magic)’이 들어가는 데서 착안한 것. 이 광고가 인기를 끌면서 그 뒤로 생리를 마술 또는 마법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죠.
언제부터 대중이 ‘생리=매직’이라고 널리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2002년 세상에 나온 영화 ‘공공의 적’에 “여자는 왜 한 달에 한 번씩 그 매직에 걸린다 안 하요. 여자친구가 그날이 그날이어서 내가 대신 약국에 매직 사러 갔당께”라는 대사가 등장하는 걸 토대로 2000년대 초반에는 확실히 이런 표현을 언중(言衆)이 널리 쓰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래 대사에 여자친구는 세 글자 비속어로 나옵니다.)
이 대사에도 ‘그날’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처럼 직접 언급하기 어쩐지 부끄러운 낱말을 다른 낱말로 바꿔 완곡하게 표현하는 건 퍽 일반적인 언어 현상입니다. 특히 생리를 뜻하는 낱말은 전 세계적으로 5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생리를 ‘딸기 주간(週間·Erdbeerwoche)’이라고 부르고, 미국인들은 ‘플로 이모(Aunt Flow)’라는 말을 씁니다. 바다 건너 영국하고 묘한 관계인 프랑스에는 “영국 군대가 도착했다(Les Anglais ont debarqu¤)”는 표현도 있다고 하네요.
사실 ‘생리’라는 낱말도 완곡한 표현입니다. 생리(生理) 그 자체는 “생물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 또는 그 원리”(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라는 뜻입니다. 노벨 생리학상은 여성들이 한달에 한번 걸리는 마술에 대한 연구 공로로 받는 상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많은 한국 사람들은 ‘생리 = 월경(月經)’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리라는 표현을 월경이라는 뜻으로 이렇게 널리 쓰기 시작한 것도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1962년 신문 기사만 해도 “생리대 = 월경대”라고 별도로 설명할 정도였습니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 중인 70대 어머니들은 생리를 자연스럽게 “멘스(menstruation)”라고 표현했죠.
일본에서도 ‘세이리(生理)’를 ‘겟게이(月經)’와 같은 뜻으로 씁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생리를 월경이라고 쓰는 건 한국과 일본뿐입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 동아일보에 ‘생리기(간)’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걸 보면 우리가 월경을 생리라고 부르는 건 일본 영향일 개연성이 큽니다.
일본어로 생리를 뜻하는 표현 중에는 ‘안네(アンネ)’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건 한국에서 생리를 마법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생리용품 브랜드 중에 안네가 있었던 거죠. 이 브랜드가 이름을 이렇게 지은 건 안네 프랑크가 쓴 ‘안네 프랑크-소녀의 일기’에 생리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안네 프랑크는 생리에 관해 쓴 세계 최초의 작가”라는 평가도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월경을 월경이라고 부르기가 어려워 생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생리를 생리라고 부르기도 참 어렵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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