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도서관]장래희망이 ‘효자’였던 아빠는 맞으면서도…윤성희 ‘낮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1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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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씨는 소설에서 쓸쓸한 상황에 가벼운 웃음을 섞어놓는다.  동아일보DB
윤성희 씨는 소설에서 쓸쓸한 상황에 가벼운 웃음을 섞어놓는다. 동아일보DB
‘아빠는 외할머니에게 고등학교 일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맞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장래희망을 적어내라. 그래서 아빠는 효자라고 적었다. 그러자 담임이 아빠를 불러내 말했다. 아버지가 장래희망인 놈은 봤어도 효자가 장래희망인 놈은 처음이다. 다시 써와! 아빠는 다시 써가지 않았다. 담임은 효자가 장래희망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건 미래로 미루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아빠는 다시 쓰기 싫다고 말했다. 화가 난 담임이 아빠의 뺨을 때렸다. 한 대, 두 대, 세 대. 아빠의 말을 들은 외할머니가 거참, 고집도 참, 세네. 하고 중얼거렸다. 아빠는 자신을 때린 선생님에게 몇 달 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윤성희 소설 ‘낮술’에서

나도 학교 다닐 때 장래희망을 써냈었다. 내 눈에 근사하게 보이는 직업을 적었다. 그 직업의 환함만 내 눈을 한 가득 채웠으니, 그 뒤의 그늘을 알았더라면 다른 직업을 적었을지도, 혹은 어느 직업도 적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일은 그렇게 환함과 어두움이 있는 것이고, 환하다는 건 어두움이 있기에 가능한 단어일 것이다.

윤성희 씨의 소설 ‘낮술’에서 아빠는 장래희망을 ‘효자’로 적어서 낸다. 효자는 장래희망이 될 수 없다고, 그건 장래의 바람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담임선생님은 아빠에게 화를 낸다.

‘효자’는 아빠가 장래에 간절하게 됐으면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아빠는 장래에 효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안 계셔서다. 아빠가 담임선생님한테 뺨을 맞고도 부모님이 돌아가셨단 얘기를 하지 않는 장면에선, 입을 열면 울까 싶어 꾹 참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진다.

윤 씨는 슬프고 쓸쓸한 이야기에 유머를 겹쳐 쓰는 작가다. 그의 소설에서 삶은 상처의 연속이지만 사람들은 악을 쓰거나 비통해 하는 대신, 무겁지 않은 웃음과 함께 상처를 견뎌내고자 한다. 삶에는 명과 암이 공존함을 일러주는 ‘윤성희 식 글쓰기’인 셈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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