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심의위원회는 5일 ‘동백아가씨’ ‘왜 불러’ ‘한 잔의 추억’ ‘미인’ 등 방송금지곡 500곡을 해금 발표했다.”(동아일보 1987년 9월 5일자 8면)
앞서 1987년 8월 18일 공연윤리위원회에서 공연금지곡 186곡을 해제한 뒤였다. 해금된 가요의 주된 규제사유 중 ‘표절’의 경우 표절 심의기준에 따라, ‘왜색’의 경우 일본색조가 지나친 것을 제외하곤 해제됐다. ‘저속퇴폐’ 역시 기준에 따라 해제됐다.
‘아침이슬’ ‘고래사냥’ ‘왜 불러’ 등 지금까지 사랑받는 노래들도 이때 해제됐다. 발표에 따르면 ‘방송부적합 등 규제사유가 애매한 것’이었다.
양희은의 가수 데뷔곡으로 널리 알려진 ‘아침이슬’은 1971년 ‘건전가요 서울시문학상’을 받기도 한 노래다. 그러나 4년 뒤인 1975년 5월 유신정권이 긴급조치9호를 발동하면서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대학생 김민기가 밤새워 술을 마신 다음날 서울 돈암동 야산 공동묘지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쓴 곡인데, 공안당국이 가사 중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부분이 ‘불온하다’고 본 거였다.
‘아침이슬’은 이렇게 고초를 겪으면서 오히려 더욱 많이 불렸다. 대학가에선 민중가요로 자리 잡았다. ‘규제사유 애매한 것’이라고 분류된 것이 오히려 국민 가요로 자리잡은 계기가 됐다. 이렇게 묶였던 금지곡과 금서들이 해금되면서 공식적으로 대중과 만나게 된 것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였다.
‘아침이슬’ 등이 공연금지곡에서 풀려났을 때 동아일보 사설은 이렇게 적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 송창식의 ‘고래사냥’ 등 낯익은 노래들을 이제는 마음 놓고 부르고 마음 놓고 듣게 된 해방감도 좋지만 노래 하나 마음껏 부르지 못한 암울했던 역사의 한 구비를 흘려보내고 그야말로 새 시대, 자유화의 시대를 여는 문화의 첫 장이 열린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동아일보 1987년 8월 19일자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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