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청자가 줄어든다지만 세계 어디서나 잘 만든 스토리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팬임을 고백하며 “백악관도 드라마처럼 효율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프랭크 언더우드가 부럽다”고 푸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화려한 드라마의 탄생 과정을 작가들에게 들어보니 ‘짠함’ 그 자체였다.
6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열린 ‘콘텐츠 인사이트’ 세미나에서 국내 간판 작가들이 드라마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파리의 연인’ ‘태양의 후예’ ‘도깨비’의 김은숙 작가(44)는 “햇반은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했고, ‘싸인’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45)는 “대본이 잘 안 풀릴 때 24시간 이상 밤을 새워야 해답이 나온다”고 했다. 서로 ‘절친’이자 똑같이 12세 딸을 둔 두 사람은 “우리는 좋은 엄마가 못 된다”고 입을 모았다.
두 시간의 강연이 끝난 뒤 김은희 작가를 따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법의학·수사물 등 장르 드라마를 연달아 성공시킨 김 작가는 스스로 ‘대본을 머리가 아닌 발로 쓰는 편’이라고 했다. 그에게 사전 조사 방법을 묻자 “기관 홍보실에 도움을 요청해도 질문이 막연하면 뻔한 이야기만 돌아온다”며 “소개팅을 나갈 때 마음으로 꼼꼼하게 준비해야 재밌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고 답했다.
김 작가는 신인 시절 ‘싸인’을 쓰기 위해 수소문 끝에 겨우 전문가를 만나고도 시니컬한 반응에 좌절했다고 한다. “저는 캐릭터를 알고 싶었는데, 그분들은 특이한 케이스를 알려주면 된다고 생각해 막막했다”며 “결국 도움이 될 책을 한 권이라도 알려 달라고 해서 책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그 뒤에는 자료 조사를 통해 필요한 질문을 충분히 준비하고, 심지어 옷에도 신경 쓰면서 한마디라도 더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했다”고 했다.
그는 대본을 쓰다 막힐 때면 ‘나만 재밌는 거 아냐?’라고 항상 스스로에게 되묻는다고 한다. “각계각층에 모니터 요원을 많이 둬요. 수사물에 관심이 없는 우리 언니는 어떻게 볼까. 그런 식으로 많이 듣는 편이죠. 저는 은숙이처럼 자신감이 있기보다 소심한 편이고 천재도 아닌 노력파예요. 재밌는 작품을 만들려면 계속해서 노크를 해야 합니다.”
노력파라는 말처럼 그녀는 지난해 ‘시그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MBC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2016’을 집필했다. 지금은 내년에 넷플릭스로 공개될 예정인 조선시대 좀비물 ‘킹덤’에 집중하고 있다. 언제 쉬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 작품 쓰는 걸로 힐링한다”고 했다. “대본을 4부쯤 쓰면 지겨워지거든요. 빨리 끝내고 새 얘기를 쓰고 싶더라고요. 나이가 들어서 데뷔했기 때문인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요.” 김 작가는 38세에 ‘위기일발 풍년빌라’로 데뷔했다.
그런 그의 다음 도전은 무엇일까. “장르를 떠나 더 복합적인, 새로운 얘기를 쓰고 싶어요. ‘이제 김은희가 이런 것도 쓰는구나’ 싶은 것을요. 결국 장르물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그런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더라도 좀 더 감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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