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나무로써 ‘시간박물관’ 같은 거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기념식수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좋다.” “백년, 이백년 세월이 흐르면 볼만해지지 않겠어요?” “천년, 이천년 세월이 흐르면 더 볼만해질 테지. 좋다. 시간에 다는 방울 같은 것이다. 나무라는 것이.”
-이윤기의 소설 ‘봄날은 간다’에서 나무가 시간에 다는 방울 같은 것이다? 이 묘한 비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시간에 방울을 달아놓으면, 세월을 어찌 보내느냐에 따라 은방울로 되기도 하고 금방울로 되기도 한다고, 세월을 잘못 보내면 쇠방울은 녹슨 쇠방울 밖에는 되지 못할 거라고.
이윤기 씨는 ‘그리스 로마신화’로 잘 알려진 신화학자이자 ‘장미의 이름’ ‘그리스인 조르바’ 등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로도 유명했지만 재기 있는 소설가이기도 했다. 단정하고 깔끔하면서도 의미를 단단히 채워 담은 소설의 문장들에선 번역으로 다져진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봄날은 간다’에서 화자는 작업실이 있는 동네의 밭을 빌려 나무를 심을 생각이다. 그 동네는 일흔 즈음 어른들이 동네 잣나무를 ‘저 노인네’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런 그가 동네에서 만난 선배는 대학을 그만두고 뛰쳐나온 뒤 소식을 들을 수 없던 이였다. 그런 그가 나무장사가 돼 중년을 보내고 있었다. 화자는 선배에게 나무 심기의 꿈을 털어놓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동네 잣나무가 ‘저 노인네’라면, 다른 나무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품고 있을까. 속절없이 흘러가는 듯 보였던 세월이지만 나무 한 그루가 품고 있는 시간에 비하면 짧기 그지없다. 나무장사가 된 선배의 말은 얼핏 회한에 찬 듯하지만, 그는 실은 나무심기를 통해 시간의 의미를 터득한 이다.
소설 말미에 이르러 비로소 화자는 고백한다. “내가 매단 방울이 어떤 방울로 변할지 그것은 관심이 없다. 나무는 내 재산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실존에 속할 것이다.” 작가의 주제의식은 여기에 오롯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