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마지막 피 한 방울 마음의 여백까지 있는 대로 휘몰아 너에게 마구잡이로 쏟아져 흘러가는 이 난감한 생명 이동’
-신달자 시 ‘그리움’
사랑이 때 돼서 밥 먹고 세수하는 일상 같다면, 혹은 아무 때나 펼쳤다 덮었다 할 수 있는 책읽기 같다면…. 그러나 사랑은 덤덤한 일과도 아니고 쿨하게 맺었다 끊었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벼락같이 온다. 내 마음대로 상대를 선택할 수도 없고, 내 마음대로 유효기간을 정할 수도 없다. 더욱이 그건 내 몸의 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내 마음에 손톱만한 여백도 없이 오로지 너에게로 향하는 감정이다.
신달자 시인은 결혼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 동안 돌봤다. 본인도 암 투병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시인은 “인생에는 면제가 없다.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오고야 만다”며 이렇게 조언한다. “지금 견디기가 너무 어렵다면 다리 건너기라고 생각하라. 그 다리를 건너야 행운을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그리움’에는 시인의 생의 무게가 가늠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의 감정에 기꺼이 취한 시적 화자의 기쁨이 느껴진다. 나는 질서도 없이 마구잡이로 너에게 쏟아져 흘러간다. ‘사랑’을 ‘생명 이동’이라는 엄청난 표현으로 부르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시적 화자는 이 감정이 짐짓 ‘난감하다’고 말한다. 발랄한 유머 감각이다. 인생에서 반드시 건너야 할 다리를 만났을 때 시인은 사랑의 시를 쓰면서 건넜다. 당신은 어떻게 견디며 건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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