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빠 지금 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어. 마치 시 같다.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이 한 그루의 나무 같다. (…) 인생은 마치 시 같아. 난해한 것들이 정리되고 기껏 정리하고 나면 또 흐트러진다니까. 그렇지만 아빠, 어제의 꿈을 잃어버린 나무같이 바람을 싫어하지는 않을 거야. 내 생각은 멈추었다가 갑자기 달리는 저 푸른 초원의 누떼 같아. 그리고 정리가 되어 아빠 시처럼 한그루 나무가 된다니까.’
-김용택 시 ‘안녕, 피츠버그 그리고 책’ 중에서 섬진강 시인 김용택에게 피츠버그와 뉴욕이 등장하는 시편은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구성진 사투리로 쓰인 시들과 달리 ‘안녕, 피츠버그 그리고 책’은 ‘안녕, 아빠/ 지금 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어’라는, 외국 시를 우리말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의 시구로 시작된다. 그럴 법도 한 게 이 시는 시인이 유학 간 딸에게 받은 편지를 읽고 영감을 받아 쓴 것이다.
시적 화자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피츠버그에서 뉴욕으로 떠나려 한다. 꿈꾸는 삶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하는 화자의 심정은 복잡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이 한 그루의 나무 같다고 느낀다. ‘나무’는 그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펴내온 책의 전신이다.
‘책이 쓰러지며 내는 소리와/ 나무가 쓰러질 때 내는 소리는 달라/ 공간의 크기와 시간의 길이가 다르거든/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높은 첨탑이 있는 성당의 종소리처럼 슬프게/ 온 마을에 퍼진다니까’라는 시구에선, 책과 나무를 비교하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내보이는 시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아버지의 눈으로 보기에 자녀는 어리고 유약해 보이지만, 시인의 눈으로 보기에 딸이라는 젊은 여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중이다. ‘불을 밝힌 책장 같은 빌딩들,/ 방황이 사랑이고, 혼돈이 정돈이라는 걸 나도 알아/ 도시의 내장은 석유냄새가 나/ 그래도 나는 씩씩하게 살 거야’라는 대목이 그렇다.
딸은 삶이라는 책의 얼마쯤에서 한 장을 접었고 다른 한 장을 넘기려 하고 있다. 딸보다 20, 30년 전 먼저 그 길을 걸어온 시인은, 그가 그동안 숱하게 딸에게 했을 “걱정하지 마”라는 말을 이제 딸에게서 듣는다. 그것이 인생이다.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마/ 쓰러지는 것들도, 일어서는 것들처럼/ 다 균형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알아가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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