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진짜로 안다고, 그의 표정과 얼굴을 다 알고 있다고 믿었다가도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는 종종 낯선 얼굴과 마주친다. 13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가 들려준 말러 교향곡 5번이 그랬다.
독일 남부의 가장 넉넉한 도시인 뮌헨처럼, 단정하고 우아한 차림새의 신사를 떠올리게 하는 오케스트라 특유의 소리가 바그너 오페라에 능한 베를린 필의 차기 수장 키릴 페트렌코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냈다. 1부의 시작은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랩소디였다. 피아니스트 이고리 레비트의 연주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에 어떤 틈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긴밀한 호흡을 선보였다. 이어진 2부의 말러 5번은 지금까지 접했던 모든 말러 5번들을 뛰어넘는 초월의 경험이었다. 페트렌코는 묵직하고 밀도 높은 오케스트라 특유의 소리를 재료로 삼아 세밀하게 말러가 곡을 쓸 때부터 상상했던 모든 소리를 빠짐없이 들려주기로 작정한 듯싶었다. 씨앗이 발아하듯 점점 확장되는 세계 속에서, 그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으로 만든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는 장수처럼 무적이었다.
그는 2013년부터 켄트 나가노의 뒤를 이어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바그너의 작품들이 초연되었던 뮌헨의 국립극장을 근거지로 삼는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의 지휘봉을, 오늘날 가장 뛰어난 바그너 해석자로 꼽히는 페트렌코가 이어받은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널리 알려진 4악장 아다지에토에서 장중한 현의 멜로디는 무한히 뻗어나갔다. 순식간에 음표로 이뤄진 무형의 공간이 생겨났다. 아다지에토 마지막, 아주 미세한 피아니시모로 소리가 잦아들 때, 금방이라도 소멸할 것 같던 순간 곧바로 5악장이 이어졌다. 아름다운 무언가를 오감을 총동원해 느끼는 듯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대상을 좀 더 가까이에서 손끝으로 직접 만지고 얼굴 가까이 가져와 향기를 맡거나 혀 아래에서 맛을 음미할 때, 그제야 비로소 진면목을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페트렌코의 손끝에서 말러의 세계는 소멸하는 비관의 세계가 아니며, 오히려 영원의 우주로 새롭게 탄생했다. 말러의 세계가 비관과 우울뿐 아니라 서정과 눈부신 기쁨으로 가득 찬 세계임을 증명하는 위대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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