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부터 열흘이나 이어지는 시월 황금연휴. 한 조사를 보니 연휴 중에 가장 선호하는 가족여행지로 미국 라스베이거스가 꼽혔다. 탁월한 선택이다.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 초등저학년 아이 등 가족과 함께 거기서 1년간 살아봐서다. 이후에도 4, 5년 간격으로 현지취재를 해온 터라 그간 변화도 읽고 있다. 나는 안다. 카지노 타운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그건 간단하다. 도박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라스베이거스야말로 지상 최고의 가족여행지다. 세계최고 수준의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서울 종로 면적의 도심에 밀집한 ‘세계 오락의 수도(Capital City of Entertainment)’여서다. 쇼만 봐도 열흘은 부족하다.
그런데 우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 채 이 도시를 찾는다. 그건 미국인도 다르지 않다. 베이거스(미국에선 흔히 이렇게 부른다)엔 알려진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게 더 많다. 자동차로 50분만 달리면 스위스알프스산악을 방불케 하는 숲(해발 2600m)에 스키장이 있고 레이크 미드(후버 댐 물막이로 조성된 호수)의 비치에선 수상스포츠도 즐긴다.
400km대 거리(420∼435km)엔 브라이스캐니언 국립공원(420km·유타 주)과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427km),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파크가 있는 로스앤젤레스(435km·캘리포니아 주)가 있다. 200km대엔 자이언 국립공원(268km·유타 주)과 데스밸리 국립공원(228km·캘리포니아 주), 한 시간 거리(100km이내)엔 밸리 오브 파이어(Valley of Fire) 주립공원(80km)이 있다. 스키시즌이 아니라도 찾아볼 만한 리캐니언 스키장도 79km 거리다. 이 중에서도 특별한 풍광의 사막지형 ‘밸리 오브 파이어’ 주립공원을 소개한다.
‘사막 위 물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 도심을 지나는 I-15(‘인터스테이트 피프틴’이라고 읽는다). 멕시코 국경 근방의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 주)에서 시작해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 세 주를 관통하며 북상해 캐나다(앨버타 주)와 맞닿은 몬태나 주에서 끝나는 주간(州間)고속도로(총연장 2307km)다. 이 도로는 주민 이용이 가장 빈번한 기간도로. 로스앤젤레스는 물론 인근 유타와 애리조나 주를 오갈 때 이용해서다. 여행자도 마찬가지. 그랜드캐니언 북행루트도 이 길을 따르는데 밸리 오브 파이어 주립공원은 I-15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55km 지점의 갈림길로 간다.
알다시피 라스베이거스는 모하비 사막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쪽의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동쪽의 로키 산맥 사이에 형성된 광대한 사막기후지역이다. 사막기후(Arid)란 예상되는 수분 증발량이 강수량보다 많은 곳. 그러니 물이 귀할 텐데 어떻게 이런 거대 도시가 생겨날 수 있었을까. 해답은 지명(地名)에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스페인어로 ‘초원’. 그건 곧 물이 풍족하단 것인데 실제로도 그렇다. 이곳은 사막에서도 남북으로 내달리는 동서 양편의 산줄기 사이의 계곡 안, 거기서도 해발 600m의 고지다. 그런데 사막이라고 비(눈)가 전혀 내리지 않는 게 아니다. 그리고 물은 아래로 흐르게 마련. 지표수는 증발된다 해도 스며든 지하수는 자연스레 계곡에 모인다. 그게 라스베이거스 지하의 거대 강 형성 배경이다.
1905년 개통된 대륙횡단철도 서부 구간(로스앤젤레스∼솔트레이크)은 라스베이거스를 경유한다. 모하비 사막 종단 도중 증기기관차에 부족한 물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수원은 사막 지하의 대수층(帶水層·물을 함유하는 암석의 지층). 도박 도시 발전의 배경도 이 지하수다. 증기기관의 보일러에 물을 보충하는 두세 시간을 죽이기 위해 시작한 카드게임이 그것이다. 라스베이거스 철도역은 여전하다. 화물열차도 정기적으로 오간다. 위치는 프리몬트 스트리트 익스피어리언스(Freemont Street Experience·두 블록 거리의 아케이드 천장을 모니터로 꾸며 영상쇼를 진행하는 올드 스타일 카지노거리)가 있는 도시 북쪽 다운타운의 메인스트리트. 포퀸스 골든너깃 등 전설적인 올드 카지노가 모두 이 앞거리에 몰려 있다.
서부영화 배경인 ‘아름다운 황무지’
차를 달려 밸리 오브 파이어 주립공원을 찾았다. 거기 들어서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외계의 혹성에 온 게 아닌지…. 그 정도로 풍경은 생경하다. 보이나니 붉은 빛깔의 바위로만 이뤄진 나지막한 산. 초록이라곤 군데군데 키 작은 관목뿐이다. 그런 팍팍한 풍경으로 공원의 첫인상은 아무것도 살지 못할 것 같은 황무지다. 그런 곳이라면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게 인지상정.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그 고운 빛깔과 기묘한 형상의 바위산이 나를 계곡으로 끌어들였다. 어찌 보면 이것도 익숙한 풍경이다. 서부영화의 배경이어서다. 하지만 그런데서도 이곳은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압권이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황무지’다.
공원입구 방문자센터를 지나 들어선 공원. ‘올드 애로헤드 트레일(Old Arrowhead Trail)’이란 길로 차를 달렸다. 첫 번째 쉼터(주차장)는 ‘레인보 비스타(Rainbow Vista)’. 온통 붉은 바위로 이뤄진 낮은 산악이 펼쳐진 곳이다. 한참을 걸어 들어선 좁은 계곡. 산을 이룬 바위는 각각의 모양새가 만물상 격이다. 숭숭 구멍 난 것에 아예 아치(Arch)를 이룬 것까지…. 바닥도 온통 붉은 모래. 그 색깔의 원천은 산화된 철이다. 바위나 모래 모두 본색은 희다. 그게 이렇게 변한 건 착색효과. 산화된 철을 함유해 붉게 변한 모래가 바람에 날려 바위에 붙어 그리 변했다.
산화철 품은 모래가 만든 ‘붉은 예술’
여길 떠나 화이트 돔스 시닉 바이웨이(White Domes Scenic Byway)란 길로 북행했다. 길은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색의 바위계곡으로 이어졌다. 한참을 달리자 막다른 길 주차장에 이르렀다. 화이트 돔스 전망 포인트다. 그런데 이곳 풍경은 사뭇 다르다. 붉은 대지가 온통 흰 빛깔의 돌산(화이트 돔스)에 압도된 광경이다. 이 흰 바위산 기반은 석회암. 이 붉은 바위(사암)의 모태다. 장구한 세월 후엔 이것도 사암으로 변하는데 과정은 간단하다. 침식돼 흙으로 변한 뒤 압력을 받아 바위로 굳어져 붉게 변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는 데는 4억 년이 걸리지만.
그걸 통해 이 지대가 과거 바다였음이 확인된다. 그것도 해양생물이 많이 서식한 얕은 바다다. 그건 6억 년 전의 일. 이후 4억 년간 바다와 육지가 여러 차례 교체됐다. 이 석회암은 당시 바다생물의 흔적. 그리고 현재의 이 붉은 사암대지는 그 석회암의 후예인데 놀라운 건 이 공원을 덮고 있던 사암의 부스러기인 모래의 두께가 3km에 달했다는 것이다. 그게 사라져 이 모습이 드러난 건데 그러는 데 7000만 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걸 역산하면 이 붉은 바위의 나이가 대략 드러난다. 1억 세쯤이다. 그런데 바위는 하나같이 표면이 매끈하다. 바람에 실려 날아온 모래에 표면이 강타당한 결과다. 샌드페이퍼(Sand paper) 효과다.
서부의 원주민은 16세기 스페인, 17세기 유럽인의 출현 이후 수모를 당해왔다. 그런데 여기만은 피해가 전무했다. 아무도 몰라서다. 식수가 있는 곳만 뒤지다보니 지나쳤던 것. 애초엔 아나사지 푸에블로 부족 차지인데 기후변화로 물이 고갈된 후 버려졌다. 누우비 원주민부족만 가끔 찾던 곳이다. 이들은 산과 계곡, 평원과 샘으로 이동하던 유목민. 그런데 19세기 들어 아예 눌러앉았다. 백인 개척민의 공격을 피해 숨은 것이다. 1840년의 일이다.
라스베이거스(미국 네바다 주)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찾아가기: 라스베이거스∼I-15(북쪽 방향)∼크리스털(우회전)∼밸리 오브 파이어 하이웨이(30km)∼주립공원 방문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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