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그날도 비가 내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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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0일 수요일 맑음. 섬. #263 The Ink Spots feat. Ella Fitzgerald ‘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1944년)

엘라 피츠제럴드의 음반 표지.
엘라 피츠제럴드의 음반 표지.
세찬 빗줄기는 취한 화가의 붓질같이 세상의 공백이란 공백을 아무렇게나 빽빽이 채워 갔다. 거리의 사람들이 크로키처럼 달렸다.

“어우, 웬 소나기야. 여름도 갔는데.”

우린 식당 처마 밑에 제비새끼들처럼 웅크리고는 뻑뻑한 우산을 펴댔다. 우르릉 쾅쾅! 번쩍, 번개 치더니 어김없이 천둥이 지축을 울린다. 일행 중 H가 말했다. “아, 나 아까 어디 주차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 여기서 한 300m 반경 내에 K은행 건물인가 어딘데….” D가 답한다. “일단 제 차 타세요. 같이 한바퀴 돌면서 찾아보죠.”

어젯밤 여의도는 진짜 섬 같았다. 셋이서 경차에 올라타 문을 콩 닫으니 제법 아늑하다. “그러니까, 내가 마포대교를 건너서 좌회전, 우회전. 그러고는 세웠거든…. 에이, 괜찮아. 못 찾으면 내일 아침에 찾지, 뭐.” H는 어쩐지 이 상황이 퍽 재밌다는 투다. 쏴아아아∼ 빗소리, 아스팔트, 파랗고 빨갛게 울먹이는 신호등의 원들. 그리고 섬처럼 물에 갇힌 도시. 왠지 이 순간이 사진처럼 맘에 든다.

좌회전, 우회전, 우회전…. 100m쯤 돌았을까. 대로변에 주차된 하얀 차를 발견했다. “아, 여기 있다. 고마워요.” H가 말했다. “근데, 아… 너무 빨리 찾아서 실망인데….”

D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우린 흰 차에 올랐다. “대리 불렀어요. 우리 음악 들을까?” 맑은 통기타 소리가 카스테레오에서 울려나왔다. ‘…그날도 비가 내렸어/나를 떠나가던 날/내리는 비에 너의 마음도 울고 있다면….’

중력이 1.1배가 된 듯 머리가 무거웠다. 빗방울은 그래서 밤을 가로질러 못내 떨어진 걸까. ‘…다시 내게 돌아와 줘. 기다리는 나에게로/그 언젠가 늦은 듯 뛰어와 미소 짓던 모습으로….’

한 시간쯤 지나 차는 내려야 할 곳에 멈춰 섰다. 비는 꿈처럼 그쳐 있었다.

‘모든 생명에게로 비는 조금씩 떨어진다지만/나한텐 너무 많이 떨어지네/모든 마음에 눈물은 조금씩 떨어진다지만/언젠간 해가 빛나겠지… 어떤 이들은 맘속으로 슬픔을 삭인다는데/당신 생각하면 또 소나기 시작되네’(‘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 중)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ella fitzg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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