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한가위 연휴가 다가왔군요. 한가위는 달과 친해지는 때죠. 바쁜 생활 속에서 하늘을 잊고 살던 사람들도 사랑하는 이들과 모처럼 보름달 한번 쳐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랑스인 제롬 랄랑드(1732∼1807)는 달과 친한 사람이었습니다. 천문학자였으니까요. 지구의 자전에 따라 달의 각도가 달라지는 시차(視差)를 연구해 한층 정밀하게 달까지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게 했고, 그 공로로 독일 베를린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핼리혜성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한 것도 그의 공적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유명한 음악 작품과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바로크 작곡가 주세페 타르티니(1692∼1770)가 쓴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입니다. 랄랑드가 쓴 ‘프랑스인의 이탈리아 여행’이라는 글에 그는 타르티니가 한 말을 그대로 들려준다며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어느 날 꿈에 악마가 나의 하인이 되었다. 그가 나에게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려주었는데 너무나 멋져서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에서 깬 뒤 이 곡을 생각나는 대로 악보에 옮겨 적었지만 도저히 악마가 들려준 그 멋진 음악에 미치지 못해서 바이올린을 부수고 음악을 접을 생각까지 했다….”
이것이 타르티니의 소나타 G단조 ‘악마의 트릴’이 세상에 남게 된 배경입니다. 재빠른 트릴(두 음 사이를 떨듯이 빨리 오가는 장식음)이 인상적이어서 이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실제로 타르티니가 이런 말을 했는지, 순전히 랄랑드의 상상에서 나온 얘긴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악마가 연주해 들려주었다’는 이 곡은 오늘날도 음악 팬들을 매혹시키고 있습니다.
오늘(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임지영 & 임동혁 듀오 리사이틀에서 모차르트의 두 바이올린 소나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와 함께 타르티니의 이 ‘악마의 트릴’ 소나타가 연주됩니다. 연주회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즐거운 시간 가지시길 바라고, 독자 여러분도 즐거운 한가위 연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달을 보면서 ‘천문학자와 악마 이야기’라는 기묘한 조합도 한번 떠올려 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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