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대회에 나가겠다고 하자, 친정 엄마가 손주들에게 말했다. “너희 엄마는 참 별 걸 다 해.” 아이들은 우려 반, 격려 반의 표정으로 “엄마, 꼴등 하지 마”라고 했다.
올봄 프랑스 파리에서 ‘런 마이 시티(Run my city)’란 달리기 대회(9km)에 출전했다. 한동안 달리지 않았고, 여러 다른 할 일도 많아 실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래도 뛰어야 했다. 내 심장이 간절히 원하고 있었기에.
몇 년 전 북한산 숲길 10km를 1시간 1분에 뛰었던 적이 있어 러닝머신 달리기가 아닌, 바깥 달리기의 묘미를 얼핏 깨달았던 터였다. 기록에 대한 욕심도 났다. 2분만 단축하면 59분이잖아?
달리기는 재밌다. 내가 좋아하고, 날 종종 구하기도 하는 반전이란 게 일어났다. 인생처럼. 그 반전은 달리기 코스가 ‘한 편의 예술’이었다는 것이다.
달리기가 시작되자 진행요원들은 러너들을 파리 도심의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안으로 안내했다. 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 ‘발레리나’에 나오는 바로 그곳! 평소엔 입장료 내고 줄 서서 들어가는 곳을 달리게 되다니…. 러너들은 재밌어 하며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계속되는 달리기 코스인 한 구립 여성스포츠센터 안에는 ‘헨젤과 그레텔’의 쿠키집 같은 알록달록한 암벽 체험시설이 있었다. 어느 유치원에서는 악단의 공연도 열렸다. 이방인은 물론이고 파리지앵들조차 “내가 사는 도시에 이런 게 있었나”라는 반응이었다. 다들 달리기에 따른 풍광과 공연 선물을 즐겼다.
그런데 나는 후반부가 되니 그 기록이란 게 의식됐다. ‘1시간 내에 달려야 해.’ 막 달렸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반전. 평생을 흠모해온 여류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미디어도서관이 마지막 코스였다. 그때 깨달았다. 목숨 걸고 빨리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렇게 둘러볼 게 많은데…. 15km 코스 참가자들은 몽마르트르도 달렸다.
결국 9km 달리기 기록은 1시간 9분 54초. 목표는 못 이뤘지만 상관없다. 신기록을 꿈꾸며 샀던 러닝화는 앞으로 두루두루 느끼며 친하게 지내는 걸로!
올가을에도 크고 작은 달리기 대회들이 있다. 서울 북촌의 한옥들을 방문할 수 있는 달리기 코스는 어떨까. 신라의 달밤 달리기는, 춘천의 마임극장 달리기는 또 어떨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