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남 소설가는 “나이가 드니 새벽 2시까지도 잠들기 어려운 게 고역이지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 진출한 우리 축구, 야구 선수들이 요즘 경기를 잘 못해 새벽에 TV 보는 재미가 줄었다”며 웃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하루에 장례식장을 두 군데 간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2시에는 프리미어리그,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며 나지막이 탄성을 지르고 무릎을 친다. 컴퓨터를 능란하게 다루는 초등학교 2학년 손자의 손놀림에 탄복하며 인터넷 검색 요령을 배운다.
올해로 등단 64주년을 맞은 최일남 소설가(85)는 일곱 개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 ‘국화 밑에서’(문학과지성사·사진)를 통해 노년의 삶을 담담하게 응시했다. 최 소설가를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기자 출신인 그는 까마득한 후배를 시종일관 깍듯하게 대했다.
“여러 세상을 겪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은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이 책에는 내 경험을 많이 녹였어요.”
노년이 되면 너그러워지고 사리 분별도 밝아진다고 하지만 도리어 변덕을 부리기 일쑤라고 말한다(‘밤에 줍는 이야기꽃’). 장례식장에서 시대와 나라별 장례 풍습을 떠올리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궁금해하고(‘국화 밑에서’),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불통(不通)은 예전에 더 심했다고 회상한다(‘아침바람 찬바람에’).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현역 최고령 소설가’라고들 하는데 알려지지 않았을 뿐 더 나이 많은 소설가가 있을 거예요. 고마운 말이긴 하지만 나이로 사람을 규정짓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2015년 ‘최일남 소설어 사전’(조율)이 나왔을 정도로 우리말을 맛깔나게 구사하는 솜씨는 여전하다. ‘호도깝스럽다’(조급하고 경망스럽다), ‘헤실바실’(흐지부지되는 모양) 등 자주 접하지 못하는 단어가 살아서 펄떡인다.
“단어 하나를 찾으려고 반나절 넘게 고민한 적도 많아요. 안방, 화장실, 거실 등 집안 곳곳에 종이와 펜을 두고 문장이나 단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해요.”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가도 머리를 스치는 게 있으면 불도 켜지 않은 채 적는단다. 아침에 일어나 들여다보면 해독이 불가능할 때가 적지 않지만. 엄격하고 정제된 글은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 순간이 아니면 연장되지 않는 게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읽고 쓰는 기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지만 계속해야죠.”
진지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는 젊은 시절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한 단계 높아졌다.
“내 첫 작품이 ‘쑥 이야기’(1953년)라고 하지만 등단 전, 한 금융조합에서 주최한 저축 장려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한 적이 있어요. 본명을 사용하기 쑥스러워 ‘최인수’라고 썼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동리 선생이 나중에 ‘최인수가 최일남 맞지?’라며 귀신같이 아셔서 깜짝 놀랐어요.”(웃음)
그는 구상 중인 소설이 있지만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소설 쓰는 건 어렵지만 이걸 붙들고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돈으로 치는 사기보다 글로 치는 사기가 더 무서운 건데, 그건 안 했으니 그런대로 잘 살았어요.”
인촌상, 이상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쓴 문단의 거목은 스스로를 낮추고 또 낮췄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가 누구보다도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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