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군대 제대 후 첫 직장에서 방황하다 마침내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호주로 훌쩍 떠난 아들이 무척이나 그립다. 막아서거나 돌아오라고 보채지 않는 대신 아들의 방에서 아들의 침대에 누워보며 그를 이해해보려 할 뿐이다. “이따금 바람이 부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너도 저 나무를 바라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너와 내 생각이 이어져 있어.”
김용택 시인이 아들에게 쓰는 편지를 묶은 두 번째 책이다. 고등학생 아들에게 보낸 편지 50통을 모은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과 달리, 이번엔 세상 공부를 하는 장성한 아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아들의 편지도 함께 수록됐다.
아버지의 편지에서 ‘마음을 따르라’는 메시지가 시종일관 가슴을 울린다. 맥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조언은 꼰대의 잔소리가 되기 십상이지만, 묵묵한 관찰자가 되어 응원하고 축하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노오력’하라거나 ‘젊음은 이래야 한다’는 다른 어른들의 말보다 깊게 다가온다. “오늘을 잊지 말거라…. 삶은 늘 떨리는 첫발이란다.”
편지를 가장한 두 사람의 일기로 읽힌다. 늦은 밤 택시를 타고 귀가하다 차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대면하고 화들짝 놀라 술이 깼다는 청춘의 고백은 먹먹하다. 그동안 써 놓은 시가 날아가 버린 후, 기억에 남는 시가 하나도 없었다는 아버지의 고해도 솔직하다. ‘편지에서 네 체온을 느낀다’는 김 시인의 말처럼 가장 속 깊은 비밀 얘기를 나누며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누구보다 가까워질 것 같다.
스마트폰 메신저나 전화 통화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연락하는 일이 한층 쉽고 빨라졌다지만, 차분히 정리한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은 편지가 유일무이하다. 시간을 들여 나를 표현하고 또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는 건 정성스러운 일이다. 오가는 편지 속에 느껴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 매우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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