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바벨탑 경쟁’에 잃어가는 서울의 본 모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일 03시 00분


《 내 건물이니까 내 마음대로 짓는 게 아니라 주변과 조화되고 대화하는 높이로 건물을 지어야 한다. 건축물의 높이는 우리 모두가 향유하는 가치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높이인가(박현찬 정상혁·서울연구원·2017년) 》
 
최근 서울 강남 잠실 일대 재건축 단지에선 새로 들어설 아파트 ‘높이’를 두고 주민과 지자체 간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지상 50층 규모 초고층 아파트를 바라는 주민과 주거지역 35층 초과 고층 아파트는 ‘절대 불가’라는 서울시의 힘겨루기다.

건물 높이에 대한 규제는 도시 경관 훼손에서 출발한다. 잠시 눈을 감고 서울 도심 한복판을 떠올려 보자. 빽빽한 빌딩 숲과 화려한 도시 야경이 그려질 것이다. 도심을 둘러싼 초록의 산들이 잠시 스치겠지만 초고층 빌딩들이 그 자리를 채우기 마련이다. 서울 도심을 비유할 때 흔히 쓰는 ‘빌딩 숲’ ‘아파트 숲’ 이란 단어를 새삼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다. 뜻풀이 대신 ‘빽빽한, 삭막한, 고층 아파트’ 따위의 연관 검색어가 나열됐다. 평소 느끼는 서울의 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의 12층 이상 고층 건물은 7635개로 세계 대도시 가운데 가장 많다.

‘누구를 위한 높이인가’는 도시 경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전쟁 이후 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서울의 얼굴 변화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기록했다. 저자는 특히 서울 전체 주택 유형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아파트에 주목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세워진 대형 아파트단지가 초고층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서울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도성 주변을 둘러싼 북한산과 남산의 능선이 만든 아름다운 선을 초고층 빌딩이 지우고 있다는 얘기다. 경관을 해치는 건축물은 물론 간판조차 마음대로 걸 수 없는 파리, 세인트폴 대성당을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건축물 높이를 제한한 런던 등 경관 훼손 대신 기꺼이 불편을 택한 유럽의 도시들과 대비된다.

높이 규제에 대한 시시비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벨탑 경쟁을 잠시 멈추고 ‘도시의 얼굴’을 한 번쯤 살펴봐야 할 때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누구를 위한 높이인가#박현찬#정상혁#서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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