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라는 멋진 신세계의 구호는 정치가 부재한 시대에 점점 가라앉는 경제 상태를 되돌리기 위한 방법으로 디지털 강국인 한국에 안성맞춤이지 않는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손화철 외·북바이북·2017년)
1983년 8월 20일 동아일보 1면에는 ‘한국·대만 등 4국 4차 산업혁명 문턱’이란 기사가 있다. 미국 텍사스대 경제학자가 한 말을 인용한 제목이었다. 흠칫 놀라웠다. 세로쓰기를 한 한자 가득한 기사에 쓰인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 때문이다.
이미 34년 전에도 언급된 4차 산업혁명은 2017년 현재 뜨거운 이슈 중 하나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4차 산업혁명을 다룬 기사와 칼럼이 쏟아질 정도다. 얼마 전에는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위원회’가 출범했다.
4차 산업혁명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부터 반감의 대상이다. 몇십 년에 걸쳐 진행 중인 변화를 혁명이라고 규정한 것부터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이라는 공격적 제목을 단 책은 반감의 다양한 근거를 보여준다. 한국 이외에는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사용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물론 한국에서 처음 나온 말은 아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 때 클라우스 슈바프 포럼 의장이 주요 이슈로 언급했다. 이후 유독 한국에서 열광적인 반응이 나왔다.
정치인들이 이 말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 열풍이 불었다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올해 5월 대선에 나왔던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정보기술(IT) 기업의 대표였기 때문에 적임자라는 말, 위원회 설치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핵심 전략이라는 말 모두 설득력이 약했지만 후보들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정치인들이 실체보다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에 주로 관심을 뒀고 이는 반감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둘러싼 과도한 논쟁보다는 실제 진행 중인 변화를 파악하고 대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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