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북 경주 ‘동궁과 월지’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왕궁 화장실’ 유적을 취재할 때 “기생충 알이 나왔거나 땅을 팔 때 냄새가 났는지”를 연구원들에게 물어봤다. 2003년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을 발굴한 전용호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이 들려준 얘기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구덩이를 파면서 구린 냄새가 심하게 풍겨 의아했다”고 했다. 이에 발굴팀은 해당 구덩이의 흙을 채취해 분석했는데, 여기서 다량의 기생충 알을 확인했다. 삼국시대 공중화장실 유구가 국내 최초로 발굴된 것이다.
왕궁리 화장실 유적은 백제 사람들의 식생활을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채식 위주 식단에서 많이 감염되는 회충이나 편충이 주로 조사됐다.
해외 고고학계에선 생활 유적에서 출토되는 ‘똥 화석(분석·糞石)’을 중시한다. 기록이 없는 선사인들의 영양 상태나 식생활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 학계에서는 이른바 ‘화장실 고고학’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다. 그동안 국내에선 화려한 부장품이 출토되는 고분 발굴에만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옛사람들의 생생한 흔적은 오히려 화장실 같은 생활 유적에 남아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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