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입니다. 갇힌 성 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 김상헌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임금이 주먹으로 서안을 내리치며 소리 질렀다. -어허, 그만들 하라. 그만들 해.
-김훈 소설 ‘남한산성’ 중에서
1636년 겨울,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왕이 응당 있어야 할 궁이 아니었다. 청의 10만 대군이 조선으로 진격해 왔기 때문이었다. 인조는 강화도로 몽진하려 했지만 청군이 길을 끊어 남한산성에 몸을 두어야 했다.
역사는 종종 소설의 소재가 된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기록은 소설화를 마음먹기 쉽지 않다. 움직임이 없어서다. 소설가 김훈은 이 움직임 없던 47일 간 ‘말이 흘러넘쳤음’에 주목했다. 죽음을 불사하고 청에 맞서야 한다는 주전파와 치욕을 감수하고 항복해 살아야 한다는 주화파의 설전이다. 김상헌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최명길은 “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각자로 대표되는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립은 팽팽하다.
소설은 막바지, 삼전도의 굴욕을 묘사한 ‘조선 왕은 이마로 땋을 찧었다’는 문장은 ‘흙냄새 속에서 살아가야 할 아득한 날들이 흔들렸다’는 문장과 나란히 놓인다. ‘흙냄새’란 치욕과 등가이지만, 살아있기에 가능한 체험이기도 하다.
남한산성의 기록이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그때껏 유일한 가치관이었던 ‘명분’과 차마 말을 꺼내지도 못했던 ‘실리’가 같은 무게로 맞서서다.
최근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돼 화제다. 소설 ‘남한산성’을 다시 꺼내 보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숱한 정치 이슈에서 ‘명분’과 ‘실리’의 대치는 현재진행형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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