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나라나 국제 정세에는 개개의 지도자들의 성향과 이념, 기술 말고도 여러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 영향은 일시적이다. 결국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남는다.―지리의 힘(팀 마샬·사이·2016년) 》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한은 여전히 광적인 데다 곧잘 효과가 있는 ‘강력한 약자’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지배층은 볼모나 다름없는 주민들에게 조국이 온갖 역경과 외국 악마들에게 당당히 맞서는 강력하고 위엄 있는 나라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북한 지배층이 이런 행세를 할 수 있게 된 이유 중 하나를 지리적으로 분석한다. 18세기 한반도의 ‘은자의 왕국’이라는 별칭은 한반도가 정복과 점령, 혹은 어디론가 가기 위한 경유지가 되자 스스로 고립을 택한 데서 나왔다. 한반도가 이런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천연장벽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북쪽에서는 일단 압록강을 건너면 남쪽 해상까지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없다. 반대로 해상에서 육로로 진입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배경에서 몽골, 일본 등이 한국을 여러 차례 침략했다. 북한이 연약한 것 같되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역할을 해내는 것은 일종의 트릭으로, 한국의 위치와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25년간 국제 문제를 취재해 온 신문기자 출신의 저자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지리가 인류 생활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지정학(geopolitics), 지경학(geoeconomics)이 아닌 지리(geo)로 세계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시선이다. 저자는 미국, 서유럽, 중국, 한국과 일본 등 전 세계를 10개 지역으로 나눠 ‘지리의 힘’이 현대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꼼꼼히 나열하고 있다.
예컨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영국이 유럽대륙에서 떨어져 있는 섬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중국해 분쟁 등 중국이 수많은 영유권 분쟁을 겪는 건 중국의 해상 지리 특성에 따른 봉쇄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의 분석은 언뜻 ‘결정론’적인 접근처럼 보이지만, 세계 정치와 경제가 작동하는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재밌는 시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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