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딸의 가을운동회에 갔다. 하늘은 파랗고 높았다. 공굴리기, 줄다리기도 있지만 운동회의 백미는 이어달리기다. 전교생이 둘러앉아 목청껏 응원을 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극적인 역전이 일어났다. 최선을 다한 계주 선수들, 어쩌면 더 최선을 다해 응원한 아이들….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진심의 응원’을 할까. 어른들의 인생 레이스에서 이긴다는 것은 뭘까, 이어 달리는 것의 의미는….
집으로 오는 길에 딸이 자신의 ‘18번’ 동요인 ‘난 네가 좋아’를 흥얼거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너와 나의 마음속에 핀 우정이란 영원한 약속.”
왜 그때 피에르 베르제의 얼굴이 떠올랐을까. 운동회 무렵 있었던 그의 사망을 깊게 애도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베르제는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인 이브 생로랑(1936∼2008)의 동성 연인이자 50년 지기였다. 나는 9년 전 생로랑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떴을 때보다 이번 베르제의 소식에 솔직히 더 슬펐다.
베르제는 1958년 생로랑이 크리스티앙 디오르에서 첫 쇼를 할 때 그를 만났다. 서적 판매상이던 베르제는 그 쇼에 왔다가 생로랑과 마음이 통했다. 뛰어난 디자이너였지만 비즈니스엔 ‘젬병’인 생로랑에게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어 주고 평생 사업을 키워준 게 베르제였다.
친구가 술과 마약에 허우적댈 때마다 붙잡아준 것도, 생로랑 사후 둘이 수집했던 미술품들을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아 약 7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한 것도 그였다.
그들은 모로코 마라케시의 마조렐 정원도 사서 함께 가꿨다. 지난해 그곳에 가봤다. 파란 건물과 노란 화분, 빨간색 열대 꽃…. 생로랑의 옷이, 그들의 우정이 환생한 듯했다.
베르제는 오랫동안 파리 마르소가에 ‘이브 생로랑 박물관’ 건립을 준비했다. 친구가 30여 년간 디자인을 했던 그 장소에 이달 3일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앞서 세상을 뜬 베르제는 끝내 보지 못했지만 기나긴 행렬이 지금 그 박물관 앞에 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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