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제왕절개로 쌍둥이를 얻었습니다. (축하 댓글 미리 감사드립니다.) 제왕절개를 두 부분으로 나누면 ‘제왕(帝王)’과 ‘절개(切開)’가 됩니다. 절개라는 표현을 쓰는 건 산모 배를 가르는 수술을 하기 때문일 터. 그러면 여기 등장하는 제왕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영어 표현에 힌트가 들어 있습니다. 제왕절개를 영어로는 ‘Caesarean(또는 Cesarean) Sec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게 왜 힌트냐고요?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기원전 44) 그러니까 영어명 줄리어스 시저의 성(姓)을 알파벳으로 쓰면 ‘Caesar’거든요.
그저 우연이 아닙니다. ‘영어사전의 영어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옥스퍼드 사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 방법으로 태어났다는 이야기에서 이 표현이 유래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왕절개에서 제왕은 정말 카이사르인 걸까요? 아니니까 이 글을 쓰고 있겠죠?
일단 카이사르가 제왕절개로 태어났다는 근거가 빈약합니다. 카이사르가 제왕절개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근거로 삼는 건 10세기에 세상에 나온 ‘수다(The Suda)’라는 백과사전입니다.
카이사르가 세상에 나온 지 1000년이 지난 다음 나온 이 책은 어머니가 임신 9개월째 숨졌지만 이 수술법 덕분에 카이사르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책은 라틴어로 ‘자르다’는 동사가 ‘caedere’였기 때문에 카이사르가 이런 이름을 얻게 됐다는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많은 영웅이 알을 깨고 나오듯 카이사르가 죽어가는 어머니 배를 가르고 나왔다고 전하는 버전이 있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신화적 상상력이 너무 뛰어났다 스튜핏’입니다.
일단 카이사르의 어머니 아우렐리아 코타(기원전 120~기원전 54)는 스무 살에 이 막내아들을 낳고도 46년을 더 살았습니다. 이게 중요한 사실인 이유는 예전에는 제왕절개를 하면 엄마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어차피 엄마는 죽을 테니 아이라도 살려보자’고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는 게 제왕절개였습니다.
왜 엄마는 죽었을까요? 다른 모든 걸 떠나 당시 사람들은 지금처럼 마취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과학 시간에 배우는 대표적 마취제 ‘클로로포름’이 세상에 나온 게 1847년입니다. 흔히 돼지를 거세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스위스 사람 자코브 누페르가 1500년경 처음으로 아내와 아이를 모두 살리는 제왕절개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1881년만 해도 제왕절개를 시도한 산모 중 85%(영국 기준)가 숨졌습니다.
어떤 백과사전에는 카이사르가 제왕절개로 태어난 첫 번째 사람이라고 돼 있기도 합니다. 당연히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최소한 기원전 3세기에는 제왕절개로 사람이 태어난 기록이 있거든요. 카이사르 이전에도 사람들이 임신부 배를 가르면 아이는 살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확실합니다. 각종 신화에 제왕절개 형태로 태어난 신(神)이 등장한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게다가 카이사르는 이름이 아니라 성(정확히는 가문명·cognomen)입니다. 카이사르의 아버지 이름 역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3세)’였습니다. 할아버지 이름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입니다. 이렇게 가문명을 물려받았는데 갑자기 제왕절개 때문에 카이사르가 카이사르가 됐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카이사르 조상 중 누군가 이런 방식으로 태어났을 수는 있지만 그게 우리가 아는 그 카이사르는 아닌 겁니다.
그러면 왜 제왕절개를 뜻하는 영어 낱말에 카이사르가 들어가게 된 걸까요? 위에서 보신 것처럼 라틴어로 ‘자르다’는 동사가 ‘caedere’였기 때문일 확률이 높습니다.
누마 폼필리우스 왕(기원전 753년~기원전 673년)이 통치하던 시절 로마는 이미 ‘렉스 카에사레아(Lex Caesarea)’라는 법령을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법령은 임신부가 숨지면 아이를 배속에서 꺼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법령을 만든 건 당시 사람들은 엄마와 아이가 땅에 같이 묻히는 걸 불경스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간혹 카이사르가 이 법을 처음 시행해 제왕절개를 제왕절개라고 부른다는 의견도 보이는데 이 역시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종합하자면 그냥 ‘(어머니 배를) 가른다’는 뜻으로 이 수술에 ‘Caesarea’를 썼는데 하필 카이사르가 제왕의 대명사다 보니까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착각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아마도 한국에 이 낱말을 전했을 일본에서도 ‘테이오우셋카이(帝王切開·제왕절개)’라고 쓰고, 독일어로도 ‘카이저’가 들어간 ‘카이저슈니트(Kaiserschnitt)“가 제왕절개를 뜻합니다. (카이저 자체가 카이사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서울 통계표‘에 따르면 지난해 신생아 중 41.5%가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는 서울시에서 자료를 공개하기 시작한 2007년(36.0%)과 비교하면 5.1%포인트 늘어난 숫자입니다.
아, 마지막 보너스. 시저 샐러드(Caesar Salad)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시저 카르디니(1896~1956)가 요리법을 개발해 이런 이름이 붙었을 뿐 카이사르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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