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의 발전사를 보면 위기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1980년대 이후 세계 20개국에서 모두 25차례의 금융위기와 71차례의 외환위기가 발생했으니 한 나라에 평균 4번의 위기가 반복되었음을 알 수 있다.―외환위기 징비록-역사는 반복되는가(정덕구·삼성경제연구소·2008년) 》
1997년 11월 21일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국민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외환위기를 견뎌냈다. 실직한 직장인부터 부도를 맞은 사업가, 취직할 곳이 없어 방황했던 대학생들까지.
“대학교 4학년 때 외환위기가 터져 갑자기 진로를 바꾸고 원치 않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들이 지금은 무용담으로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생존의 문제였다. 한강대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아지자 다리 아치에 오르지 못하게 공업용 기름 177통을 바른 사실이 기사화되던 때였다.
이런 와중에 정부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이 책은 상세하게 담고 있다. 저자는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과 제2차관보를 거쳐 외환위기 당시 IMF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다. 그는 “신용등급 급락이 한국을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도화선이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비용·저효율 경제구조의 심화, 매출액에 비해 과다하게 차입을 들여왔다가 이어진 대기업 부도, 부실채권 급증, 외국 금융기관의 급속한 자금 회수 등도 문제로 지적했다.
미셸 캉드쉬 당시 IMF 총재와 벌인 숨 막히던 협상 과정부터 IMF 실무협의단 숙소였던 서울역 앞 힐튼호텔에서 합의서를 만든 과정,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해외은행 관계자들과 단기차입금 축소 방안을 고민한 일 등도 고스란히 수록됐다.
월간 수출액이 사상 최고를 기록해도 청년 체감실업률이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게 나타나는 게 작금의 경제현실이다. 외환보유액은 충분해졌지만 1400조 원으로 늘어난 가계부채가 시한폭탄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이 책의 경고가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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