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문화권인 한중일은 예부터 붓을 사용한 독특한 서체를 발전시켰다. 이 중 한국과 일본은 한글과 가나를 각각 창안해 이에 적합한 고유 서체를 만들었다. 진귀한 고서(古書)들을 통해 삼국의 서체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한중일 서체 특별전’이 최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렸다.
중국 은허박물관에서 정밀 복제한 갑골문은 글씨 바탕이 된 거북이 뱃가죽의 형태가 완연하다. 기원전 1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자 원형답게 복잡한 부호를 닮은 자형들이 독특하다. 중국학계에 따르면 제사와 전쟁, 사냥, 질병에 대한 내용이 주로 적혀 있다. 원소장품에 대한 대여를 추진했으나, 사드 논란에 따른 영향으로 복제품이 전시됐다.
일본 자료에서는 1527년 쓰인 ‘이세 이야기(伊勢物語)’가 눈길을 끈다. 오늘날 소설과 비슷한 양식의 이 책에는 한 남자가 우연히 마주친 아름다운 여인에게 자신의 옷을 찢어 시를 적어 보낸 이야기 등이 적혀 있다. 낭만적인 내용답게 필체가 호방하고 선의 변화가 다채로운 것이 특징이다.
1798년 정조가 큰외숙모에게 쓴 한글 편지도 이채롭다. 스스로를 조카라고 칭하며 외숙모의 안부를 살뜰히 챙기는 내용이다. 글에 담긴 정갈한 서체에 꼿꼿한 철인군주의 성품이 오롯이 담겨 있다. 훈민정음언해본과 월인석보 등 초기 훈민정음 글씨체를 볼 수 있는 판본들도 볼 수 있다. 마치 아이들이 제멋대로 휘갈겨 쓴 것 같은 옛 필사본 소설의 서체도 인상적이다.
전시품에 대한 상세 설명을 별도의 전자 모니터에 담아 서체 관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내년 1월 21일까지. 02-2124-6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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