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진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이래서다. 노인과 경찰이 나오고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주인공 각각의 입장에서 이야기는 흠 없이 완결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작은 트릭을 통해 모두의 관점에서는 모순 없는 서사가 성립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짜 놨다.
소설처럼 세계를 하나의 관점에서 온전히 서술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기 잘난 맛에 살다 가는 게 인생’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확신범’이다.
뇌 과학 관련 교양서에 자주 나오는 사례의 하나가 2015년 세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군 드레스 색깔 논쟁이다. 같은 옷 사진이 보는 사람마다 파랑과 검정 조합이나 흰색 금색 조합으로 달리 보였던 것. 사람들은 객관적이라고 믿었던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데 경악했다.
색깔 정도야 괜찮다. 문제는 인간이 세계를 선악 구도로 인식하는 일과 자신과 다른 집단의 악마화에 능숙하다는 것이다. 십자군전쟁이 왜 일어났겠나. 확신범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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