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해와 달리 최근 영국 런던의 주요 서점 진열대는 이달 중순 맨부커상을 받은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의 ‘링컨 인 더 바르도’ 대신 6년 만에 신작을 발표한 영국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의 신작 ‘스파숄트 어페어’(사진)로 채워졌다.
홀링허스트는 1988년 ‘수영장 도서관’으로 데뷔해 장편과 단편을 합쳐 9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한 인터뷰에서 “하루에 500자 정도만 쓴다”고 한 그의 작품은 6, 7년에 한 번씩 출간될 때마다 화제를 모았다. 그의 장편 6편은 모두 성적 소수자, 그중에도 남성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고전적인 유려한 문체로 상류층 문화를 세심하게 표현한다.
지난달 26일에 출간된 ‘스파숄트 어페어’는 1940년 청년 데이비드 스파숄트가 옥스퍼드대의 남자 기숙사에 나타나며 시작된다. 어린 시절부터 사귄 약혼녀가 있는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하기 위해 조만간 대학을 떠날 신세였으나 20대 초반 젊은 학우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젊은이들의 팽팽한 성적 호기심과 긴장감이 어느 날 밤을 계기로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1부가 끝난다.
2부는 20년이 지난 시점, 데이비드의 아들인 조니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그의 아버지는 조니에게는 엄하고, 아내에게는 무관심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사업가이다. 조니의 가족은 여느 해처럼 영국 남부의 데번에 있는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고, 여기에 조니의 프랑스인 친구 바스티앵과 이웃 별장의 중년 부부가 등장한다. 바스티앵에게 묘한 설렘을 느끼는 조니와, 조니의 어머니에게 관심을 보이는 바스티앵, 그리고 조니의 아버지와 막역한 사이임을 보이는 이웃집 남성. 이야기는 이들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지 않은 채 3부로 넘어간다.
10여 년이 지난 이후, 미술대를 졸업하고 유명 화랑에서 일하는 조니는 우연히 아버지의 대학 시절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독자들은 2부의 마지막에 아버지 스파숄트가 영국 사회를 뒤흔든 성 스캔들을 냈었음을 유추하게 된다. 총 5부로 이루어진 소설은 데이비드, 조니, 그리고 레즈비언 커플과 함께 낳은 조니의 딸 루시에 이르는 3대에 걸친 가족의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를 통해 영국 상류 사회의 문학과 예술 세계,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동성애의 역사를 그린다.
영국의 미디어는 대체로 장르 문학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편이지만 타임스, 인디펜던트, 가디언 등 유수의 언론들은 그의 신작에 모두 한결같이 높은 평점을 주었다. 아름다운 문장과 세련된 표현, 영국 상류 사회의 단면을 그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점은 평생 홀링허스트를 따라다닌 칭찬이다. 특히 5부로 이루어진 장편에서 한없이 이야기를 끌고 가고 싶은 작가적 본능을 억제한 채, 이야기의 절정에서 각 단막을 끝내 버리는 그 과감한 절제력이 작품의 문학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