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프랑스에서 출간된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커플’(사진)은 시대를 뒤흔들었던 스무 커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 중 열 커플은 민주주의가 확립되기 이전 왕과 왕비 이야기다. 책에서 일곱 번째 커플로 다루고 있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며 단두대에서 나란히 목숨을 잃은 이 부부의 이야기는 앙투아네트가 어떻게 자신의 야망을 실현해 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루이 16세는 나름 지혜롭고 똑똑했지만 우울하고 비관적인 성품에 무엇보다 권력에 대한 관심이 적고 책임지기를 싫어했다. 게다가 자신들의 멘토들이 세상을 떠나자 그 자리를 인재로 채우는 대신 부인인 앙투아네트에게 의지했다. 점점 야심가로 변모한 앙투아네트는 왕의 눈과 귀를 가렸다. 지금으로 치면 주요 국정 사안을 최종 결정하는 국무회의에 앙투아네트가 참여했다. 그로부터 불과 2년 후 프랑스혁명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프랑스에는 대통령의 배우자에게 ‘퍼스트레이디’라는 공식 직함을 주지 않고 있다. 올해 5월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부인에게 퍼스트레이디 직함을 주려다가 여론의 반발에 밀려 실패한 것도 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저자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1799년 사망하자마자 부인인 마사에게 퍼스트레이디 직함을 준 미국과 유럽의 차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남편도 거의 존재감이 없는 것도 그런 문화의 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도 커플의 본질은 사랑이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조세핀을 만난 1795년부터 승승장구하다가 1809년 자식을 낳지 못하는 조세핀과 이혼하고 난 뒤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나폴레옹의 최대 실수는 무리한 공격으로 결국 패배로 끝난 1808년 스페인 침공이나 1812년 러시아 침공이 아니라 1809년 조세핀과의 이혼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세핀과 헤어진 후 나폴레옹은 개인적으로도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결혼과 이별, 방황을 하다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과거의 인물만 다루는 건 아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 간의 만남으로 또, 서로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기로 한 계약 커플로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여성 해방 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 커플, 파리의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함께 묻혀 있는 프랑스 최고의 배우 이브 몽탕과 시몬 시뇨레 부부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브리지트가 마크롱 대통령 뒤에서 섭정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루이 14세 태양왕과 나폴레옹의 강한 리더십을 꿈꾸며 베르사유 궁전을 자주 이용하는 마크롱 대통령이 밤에 집에 가면 어떤 모습일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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