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23)과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 중 하나인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연을 1시간 앞둔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리허설 때 조성진은 악보를 보며 물었고, 래틀은 한동안 설명했다. 마치 사제관계처럼 보였다.
공연이 시작됐다. 조성진과 베를린 필의 협연 곡은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 조성진은 연주 도중 자주 래틀과 단원들을 보면서 호흡을 맞춰 나갔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련하게 템포와 소리를 조절했다. 때로는 오케스트라 음향에 숨기도, 주도권을 쥐기도 했다. 2악장 첫 부분에서 조성진이 홀로 연주를 이어 나갈 때는 음표 하나라도 놓칠까 봐 객석은 물론 단원들이 숨을 죽이고 들었다. 연주가 모두 끝난 뒤 객석 여기저기에서 “브라보”가 터져 나왔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자기만의 정체성을 보여줬다. 래틀과 즐기면서 흥미진진한 연주를 펼쳤다”고 평했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오랜만에 고국에서 그것도 베를린 필이라는 최고의 교향악단과 협연하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1악장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2악장부터 좋아지면서 자신감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협연을 마친 뒤 조성진은 래틀을 향해 크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조성진이 앙코르로 드뷔시의 ‘물의 반영’을 연주할 때 래틀은 오케스트라 의자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지켜봤다. 연주가 끝난 뒤에도 조성진이 퇴장할 때까지 한참 박수를 쳤다.
공연을 앞두고 이날 낮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성진은 래틀과의 협연을 ‘영광’이라고 표현했다. “래틀이 훌륭한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알고 있어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만큼 피아노를 잘 알기 때문이죠. 첫 리허설 때 내가 피아노 앞에 앉고 옆에서 래틀이 지휘를 하는데 제가 지금 DVD를 보고 있는 건가 했어요. 리허설이나 연주 뒤 래틀이 조언을 해줘 많이 도움이 됐죠.” 어떤 조언이었을까. “너무나 소소하기 때문에 저 혼자 간직하고 싶어요.(웃음)”
이날 베를린 필의 내한공연은 1984년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첫 공연 이후 이번이 6번째다. 특히 2002년부터 베를린 필을 이끈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내년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로 둥지를 옮기면서 이번이 베를린 필과의 마지막 내한공연이 됐다. 베를린 필은 조성진의 라벨 협연을 비롯해 슈트라우스 ‘돈 후안’,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무대에 올렸다.
당초 피아니스트 랑랑이 베를린 필과 협연을 하기로 했지만 왼팔 건막염 증상으로 한 달 전 공연을 포기했다. 이때 래틀과 친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대체 연주자로 조성진을 추천했다.
래틀은 말했다. “지메르만은 자신을 포함해 모든 피아니스트들에게 비판적인 잣대를 들이대요. 그런 그가 ‘조성진은 정말 좋은 피아니스트다. 한번 연주를 들어봐라’며 칭찬해서 어디 아픈 것은 아닌가 싶었어요. 조성진과 첫 협연 뒤 두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형제애를 만들어냈는지 알 수 있었죠. 조성진 같은 젊고 위대한 건반의 시인과 연주하게 된 것이 너무 기뻐요.”
이날이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투어 마지막 연주라는 것이 많이 서운하다고 밝힌 조성진은 어렸을 때 꿈이었던 베를린 필과의 협연, 카네기홀 연주 모두 올해 이뤘다.
“너무 빨리 꿈을 이뤄 제 자신도 놀랐어요. 아직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앞으로 베를린 필과 다시 협연하고 카네기홀에 다시 서는 것이 목표예요. 인간적으로는 간단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인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 오래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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