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책의 비법은 천천히 걷는 것이다. 볼일을 생각하며 서둘러 걸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점 더 많이 보이게 된다. ―‘우연한 산보’(다니구치 지로 작화·미우·2012년) 》
걷는 행위에는 원초적인 즐거움이 있다.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운동인 만큼 몸의 감각을 일깨울뿐더러 나 자신이 풍경의 일부로 들어가서 자연과의 일체감을 확인하게 된다. 걷기는 사유로도 연결된다. 거리를 걸으면서 복잡했던 생각을 정리하거나, 우리 주위의 사물과 풍경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도 크다.
이 때문에 많은 철학자가 걷기 예찬론을 펼쳤다. 골똘한 생각에 잠긴 채 두 발로 걸으면서 자신의 철학적 과제와 씨름하곤 했다.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소요(逍遙)철학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과 산책하면서 강의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그렇게 위대한 생각은 길에서 탄생했다.
근대 철학자들도 산책을 예찬했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를 통해 “심오한 영감의 상태. 모든 것이 오랫동안 걷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고 말했다. 몽테뉴는 ‘세 가지 사귐에 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앉아 있으면 사유는 잠들어버린다. 다리를 흔들어 놓지 않으면 정신은 움직이지 않는다”라며 산책 예찬론을 펼쳤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매일 정확한 시간에 산책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간은 걷는 즐거움과는 점점 멀어지게 됐다. 시간을 아끼는 게 돈과 직결된 현대인에게 쉬엄쉬엄 걷는다는 것은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점심시간 산책도 어슬렁거린다는 핀잔을 듣기에 좋다. 산책의 즐거움을 잊고 살게 된다.
이 책 ‘우연한 산보’는 평범한 직장인의 골목 산책기를 담았다. 별다른 계획 없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즐거움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골목에서 턱없이 옛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일상의 의미를 되짚기도 한다.
책을 통해 산책이 주는 다양한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두 발로 땅 위를 내디디며 자신만의 생각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부랴부랴 회사를 향해 가는 출근길은 몰라도, 퇴근길에는 짬을 내서 돌아갈 만한 산책 코스를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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