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아관파천 뒤 러시아가 조선을 군사적으로 보호하도록 약속하는 ‘비밀협정’을 러시아와 체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896년 고종이 보낸 러시아 특사단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모스크바 대관식에 참석해 외교 활동을 벌인 일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특명전권공사 민영환(1861∼1905)이 로바노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벌인 비밀협상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김영수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장은 ‘역사와 현실’ 12월호 게재 예정 논문 ‘명례궁 약정과 한-러 비밀협정을 통해 본 모스크바 대관식’(1896년)에서 일본, 러시아 등의 사료로 이 협상을 살폈다.
논문은 주한 일본 공사 가토 마쓰오가 고종을 독대하고 ‘한-러 비밀협정’의 내용을 입수해 1897년 12월 일본으로 보고한 자료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영환은 1896년 8월 “…조선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러시아는 병력으로 도와주거나, 혹은 다른 나라가 조선의 자주독립권을 방해하면 러시아는 특별히 공평히 처리하여…”라는 서신(조선정부명령)을 전했다. 로바노프 장관은 “러시아 황제에게 윤허를 받아 러시아 정부의 명령을 귀 공사에게 통고한다.…당연히 공평하게 처리하여 도울 것”이라는 내용을 서신으로 답했다.
다른 러시아 사료에도 로바노프가 “러시아 정부가 조선 왕실의 이익을 보호하는 가능한 협력과 행동을 제공한다”는 서신을 작성해 민영환에게 주었다고 나온다. 김 소장은 “이는 러시아의 군사적 조선 보호를 의미한다”며 “한-러 비밀협정은 러시아가 조선을 자국의 영향 아래 두려는 전략인 동시에 조선이 일본의 군사적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원치 않았던 러시아 정부가 조선 문제에서 이중적 입장을 취했으며 한-러 비밀협정은 체결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실제 러시아는 일본과 1896년 6월 ‘모스크바 의정서’를 비밀리에 체결하면서 필요하면 러시아와 일본이 공동으로 조선을 보호국화한다고 합의한 상태였다.
김 소장은 “한-러 비밀협정 뒤 조선은 압록강 두만강 울릉도의 삼림벌채권, 함경도 길주의 삼림자원 이권, 함경도 삼수와 담천 지역의 이권을 러시아에 주는 등 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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