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980년 12월 1일자 1면 ‘무영탑’에 실린 한 줄이다. 팩트에 짧은 해설을 더한 ‘무영탑’의 이 소식 뒤에는 다음과 같은 한 줄이 실려 있었다. “사회 불안 우려 있는 집회 시위 금지 강화. 불안 소지 없어지면 자연히 없어질 것을.” 1980년의 엄혹한 분위기를 가리키는 팩트였고, 그 팩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이틀 전인 1980년 11월 29일자 1면에는 ‘동아방송을 끝내면서…애청자 여러분께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사고(社告)가 실렸다. “동아방송(DBS)은 내일 1980년 11월 30일로 마지막 전파를 내보내고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11월 12일 신군부가 단행한 ‘언론통폐합’의 비극이었다. 동아방송 폐방 당시 이윤하 국장대리는 2009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강제 폐방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방송국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일 끝나고 직원들끼리 술도 많이 마셨는데 그때마다 ‘한오백년’을 불렀다. 방송에서 비탄조 멘트를 하거나 아나운서들도 프로그램을 마칠 무렵 울먹이곤 했다.”(동아일보 2009년 11월 30일자 8면)
동아방송은 1963년 4월 개국한 이듬해 당시 공보부 조사에서 33.5%의 청취율로 전국 방송인 KBS를 제외하고 1위에 올랐다. 1963년 10월 경기 여주군 조포나루터 나룻배 전복사건 특종보도, 1964년 전북 진안군 연창금광 낙반사고로 갇힌 광원이 파이프로 전한 육성, 1968년 북한 무장공비 서울 침투사건 때 생포된 김신조와 단독 인터뷰 등 동아방송의 현장 보도는 생생했다.
‘여명 80년’과 ‘정계 야화’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선보이며 애정 통속극이 주류였던 드라마 판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개국부터 폐국 때까지 18년 간 장수한 오락프로그램 ‘유쾌한 응접실’은 토크쇼의 원조였다. 모두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뉴스 버라어티 프로그램 ‘뉴스 쇼’의 마지막 방송을 진행했던 최종철 전 SBS 전무의 회고. “종방 원고 10장이 신군부의 검열로 2장으로 줄어 도저히 방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 원고를 버리고 동아일보의 사시를 읽은 뒤 ‘동아방송은 사시대로 방송을 해 왔다. 그것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 청취자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코멘트를 내보냈다.”(동아일보 2009년 12월 1일자 10면)
채널A가 12월 1일 개국 6주년을 맞는다. 예능 프로그램 ‘도시어부’, ‘개밥 주는 남자’, 시사예능 ‘외부자들’, 건강 토크 ‘나는 몸신이다’, 뉴스 토크 ‘돌직구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동아방송의 출발정신이었던 ‘새로움’의 DNA는 채널A에도 오롯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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