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함승현 옷 고치는 전문집’. 옛날 단층 건물 앞에 키 작은 나무가 있어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단풍 드는 곳. 이름 석 자를 넣은 상호가 자신감과 전문성을 보여주는 데 비해 간판 글씨체는 삐뚤빼뚤한 곳. 그 집이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올해로 77세인 함승현 씨는 교회 가는 일요일을 빼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23년간 이 가게에서 동네 사람들의 옷을 고쳐 왔다.
여러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친정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발간 눈가로 손을 잡아주던 일, 넘어져 레이스 장식이 찢긴 재킷을 가져가자 “여자가 조신해야지”라며 나무라던 일, 일하는 엄마가 보기 힘든 아이들 하교 모습을 틈만 나면 알려주던 일….
가게에 들어갔다. 그 정다운 삐뚤빼뚤 글씨가 곳곳에 붙어 있다. ‘일터를 사랑합니다’ ‘즐겁게 살자, 칭찬하며 살자’ ‘고마워요, 사랑해요’….
“아니, 왜 가게 문을 닫으시게요”라고 묻자 말씀하신다. “이젠 일 그만하고 쉬려고. 매일 아이들 건사해 주는 친정엄마 잘해 드리고. 다니다 넘어지지 말고.” 코끝이 찡해져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어드렸다. “꼭 사진 뽑아줘야 해.”
같은 동네에 사는 이사라 시인은 2008년 이 가게를 소재로 ‘함승현 옷 수선집’이란 시를 썼다. ‘…한 평 반의 실낙원에서 혼자된 몸으로 오랫동안 효녀였던 돋보기 쓴 사람 하나가 신의 이름을 빌려 시간을 늘리고 줄이고 꿰매고 있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평소에는 침묵에 익숙한 그 사람이 동네 뒷길에서는 오래된 뒷심이다.’
사진관 갈 시간이 마땅치 않아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려 하니, 이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오랜만에 사진관을 다녀왔다. 사진 속 ‘동네 뒷길의 오래된 뒷심’을 가만히 본다. 종종 그리울 것이다. 옷보다 마음을 수선해준 그분이….
댓글 0